극장에서 법정 장면이 절정에 치달을 때, 저도 모르게 손바닥에 땀이 차오른 영화가 몇 편 되지 않습니다. 영화 은 그 몇 편 중 하나였습니다. 1981년 실제로 벌어진 부림사건(부산 지역 독서 모임 학생과 교사들이 공산주의자로 조작 기소된 사건)을 바탕으로, 훗날 노무현 대통령이 된 인물의 초기 변호사 시절을 극화한 이 작품은, 스크린 너머로 묵직한 분노와 벅찬 감동을 동시에 안겨주었습니다.속물 변호사에서 인권 변호사로 — 각성의 서사 구조영화가 처음 밝아지면 1980년대 부산의 정겨운 풍경이 펼쳐집니다. 송우석 변호사(송강호)는 나이트클럽 명함을 돌리고, 부동산 등기 업무로 돈을 버는 지극히 세속적인 인물입니다. 저는 이 초반부가 정말 영리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처음부터 대단한 사명감을 가진 영웅을 내세..
1편 제작비 70억으로 688만 관객을 불러모은 범죄도시 시리즈가 4편에 이르러 사상 첫 트리플 천만, 누적 관객 4천만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저도 개봉 주에 극장을 찾았는데, 필리핀 불법 도박장 세트가 펼쳐지는 첫 장면부터 이 시리즈 특유의 끈적하고 위험한 공기가 스크린을 가득 채웠고, 그 순간만큼은 4편이라는 숫자가 전혀 낡게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2시간이 지나고 나서 남은 감정은 조금 복잡했습니다.흥행 공식과 액션 설계: 검증된 것들의 귀환범죄도시 시리즈가 코로나 이후 죽을 쓰던 한국 영화판에서 홀로 천만을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는, 일반적으로 "마동석 덕분"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닙니다. 178cm라는 특출나게 크지 않은 키임에도 불구하고 성인 남성 머리만 한 ..
한국에서 좀비 영화가 나온다고 했을 때, 솔직히 처음엔 반신반의했습니다. 서양 배우들이 아닌 한국 사람들이 좀비 앞에서 공포에 떠는 장면이 어색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거든요. 그런데 극장에서 두 시간을 보내고 나온 뒤, 그 걱정이 얼마나 쓸데없었는지를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오히려 이건 서양식 좀비 블록버스터보다 훨씬 한국적이고, 훨씬 더 무서웠습니다.K-좀비가 무서운 이유는 따로 있었습니다일반적으로 좀비 영화는 느릿느릿하고 멍청한 괴물이 나오는 장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조지 로메로 감독의 초기 좀비 시리즈가 바로 그 이미지를 굳혀놓았죠. 그런데 제가 직접 극장에서 목격한 부산행의 감염자들은 그 공식을 완전히 뒤집었습니다. 이들은 달립니다. 그것도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속도로.부산행이 선택한 가장 ..
솔직히 저는 후반부에 거대한 요괴가 직접 등장할 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전반부의 서늘한 심리적 공포에 완전히 사로잡혀 있다가 갑자기 장르가 뒤바뀌는 순간, 당황했던 것도 사실이에요. 장재현 감독의 세 번째 장편 는 풍수지리와 무속 신앙, 일제강점기의 트라우마를 한데 버무린 오컬트 영화로, 개봉 일주일 만에 수십만 명을 동원하며 화제를 모았습니다. 제가 직접 극장에서 체험한 그 압도적인 시청각적 경험과 영화 속 음양오행 논리를 함께 풀어보겠습니다.극장에서 온몸으로 느낀 시각적 체험화면이 켜지자마자 미국의 거대한 저택에 드리운 어두운 그림자가 스크린을 가득 채웠고, 저도 모르게 좌석 등받이에 등을 바짝 붙였습니다. 이 영화가 시작부터 관객의 목을 조여오는 방식은 매우 영리했어요.배경이 한국의 험..
평범한 택시운전사 한 명이 광주로 돌아간다고 도대체 뭐가 달라질까요? 저는 극장에서 이 장면을 보며 그 질문이 스스로에게 칼날처럼 꽂히는 걸 느꼈습니다. 영화 는 1980년 5월, 위르겐 힌츠페터 기자가 5.18 민주화운동의 진실을 전 세계에 알리기까지 그 곁에 있었던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그 평범함이야말로 이 영화를 가장 강력하게 만드는 무기입니다.위르겐 힌츠페터, 그가 없었다면 광주는 지워졌을까5.18을 기억할 때 저는 항상 이 질문부터 떠올립니다. 당시 전두환 정권 치하에서 국내 언론은 제 기능을 완전히 잃은 상태였습니다. 이른바 '땡전 뉴스'로 대표되는 어용 언론(정권의 입맛에 맞게 보도를 왜곡하거나 사실을 은폐하는 언론)이 방송을 장악하고 있었고, 양심 있는 기자가 진실을 보도하..
저승차사가 저승을 공격한다는 게 말이 됩니까? 처음 이 이야기의 핵심 구조를 접했을 때,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수호자가 스스로 지켜야 할 공간을 무너뜨리는 아이러니, 그것도 원귀까지 데리고 올라오면서. 직접 극장에서 마주하고 나서야 왜 이 역설이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인지 비로소 이해했습니다.압도적 비주얼, 그런데 공룡은 뭐였을까화면이 열리자마자 거대한 모래바람이 스크린을 집어삼켰습니다. 수홍의 억울한 죽음을 밝히기 위한 저승 재판의 서막이었는데, 1편에서 이미 꽤 완성도 높다고 생각했던 컴퓨터 그래픽(CG) 기술이 2편에서는 한 단계를 훌쩍 뛰어넘어 있었습니다. 여기서 CG란 컴퓨터로 실제 촬영이 불가능한 공간과 장면을 디지털로 구현하는 시각효과 기법을 말하는데, 살인지옥과 불의지옥 같은..
영화관 불이 꺼지고 스크린이 밝아지는 그 순간, 좌석에 등을 기댄 채 '그냥 재밌겠지' 싶었습니다. 그런데 131분이 지나고 나서 제가 처음 한 행동은 눈가를 훔치는 것이었어요. 웃다가 울었습니다. 그것도 꽤 세게. 광해, 왕이 된 남자는 천만 관객이 선택한 작품이지만, 저에게는 숫자보다 훨씬 묵직한 무언가를 남긴 영화입니다.극장 관람으로만 느낄 수 있는 것들이 있었습니다혹시 이런 경험 있으신지요. 커다란 스크린으로 보면 분명히 달라질 것 같아서, OTT로 미리 본 영화를 굳이 극장에서 다시 챙겨 본 적이요. 저는 이 영화가 딱 그랬습니다.진짜 왕 광해군이 처음 등장하는 장면에서 그 눈빛 하나가 극장 안을 순식간에 압도했습니다. 서늘하고 예민하게 주변을 훑는 눈, 독살의 공포에 떠는 손끝의 미세한 떨림이..
2026년 9월 30일 개봉한 는 7년 전 완결된 네이버 웹툰을 스크린으로 부활시킨 한국형 히어로 액션물입니다. 저도 개봉 당일 MX4D(영화 장면에 맞춰 의자가 흔들리고 바람·물 같은 특수 효과가 실시간으로 작동하는 특별 상영 포맷)로 직접 봐온 터라, 이 글은 순수하게 제 눈과 몸으로 경험한 것만 씁니다.웹툰 원작이 영화로 살아남는 조건 — 배경과 맥락네이버 웹툰 원작을 극장판으로 옮기는 작업은 IP 각색(Intellectual Property Adaptation, 원작 지식재산권을 다른 매체 형식으로 재해석하는 과정)의 대표적인 고위험 선택지입니다. 팬층은 이미 촘촘한 세계관을 머릿속에 품고 있는데, 영화는 평균 100분 안에 그것을 처음 보는 관객에게도 납득시켜야 하는 이중 과제를 안고 있습니다...
속편이 전편을 뛰어넘은 적이 단 한 번이라도 있었던가요? 극장을 나서면서 저는 그 질문을 오래 붙들고 있었습니다. 범죄도시2는 전편을 넘어서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넘어서지 못했다는 사실이 그리 큰 실망으로 남지 않았던 영화이기도 했습니다. 2시간이 10분처럼 지나간 그 경험이, 저에게는 꽤 솔직한 증거였습니다.마석도라는 캐릭터, 속편에서도 살아남았는가속편 징크스(Sequel Curse)라는 말이 있습니다. 여기서 속편 징크스란 성공한 전편의 패턴을 그대로 복제하면서 스케일만 키우다가 오히려 캐릭터의 생명력을 잃어버리는 현상을 뜻합니다. 제가 범죄도시2를 보기 전에 가장 걱정했던 것도 바로 이 지점이었습니다.마석도라는 캐릭터는 범죄도시 이전에도 비슷한 형태로 존재했습니다. 이웃사람, 부산행, 성난..
영화관 불이 꺼지고 첫 장면이 시작되자마자, 저는 팝콘 봉투를 내려놓았습니다. 손이 떨려서가 아니라, 집어들 생각 자체가 사라진 것입니다. 최동훈 감독의 2015년작 은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독립운동 첩보 액션 영화로, 개봉 당시 천만 관객을 돌파한 작품입니다. 아내와 함께 뒤늦게 재관람하면서 처음 봤을 때와는 또 다른 감정이 밀려왔습니다. 역사를 스크린 위에서 이렇게 뜨겁게 마주한 건 오랜만이었습니다.지붕 위 저격수, 안옥윤이 방아쇠를 당기는 순간제가 이 영화를 보면서 가장 심장이 쪼여들었던 장면은 단연 안옥윤의 저격 장면이었습니다. 경성 한복판에서 지붕을 날렵하게 가로지르며 표적을 추적하는 그 장면, 커다란 화면 위에 가득 찬 그녀의 눈빛이 얼마나 서늘하고 단단하던지 저도 모르게 두 주먹을 꽉 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