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휴직 중에 모처럼 극장 의자에 몸을 묻었습니다. 아이가 낮잠 드는 틈을 타 집 근처 멀티플렉스로 달려가 고른 영화가 바로 였는데, 오프닝 총격전이 끝나기도 전에 "아, 이거 그냥 오락 영화가 아니구나" 싶었습니다. 일반적으로 남북 소재 한국 영화는 감동에 치우치거나 첩보 스릴러에 치우친다고 알려져 있지만, 제 경험상 이 작품은 두 방향을 동시에 잡으려 한 보기 드문 시도였습니다.버디무비의 공식, 근데 이건 좀 달랐습니다버디무비(Buddy Movie)란 성격이나 배경이 정반대인 두 인물이 한 팀을 이뤄 사건을 해결하는 장르를 가리킵니다. 제가 직접 봤는데, 는 이 공식을 충실히 따르면서도 남북 분단이라는 한국 고유의 맥락을 끼워 넣어 단순한 장르 복제와는 다른 온도를 만들어냅니다.북한 특수부대 출신 형..
2007년 여름, 극장 앞에 줄을 서던 그 풍경이 아직도 선합니다. 심형래 감독의 는 한국 설화 속 이무기를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포맷으로 끌어올린 작품으로, 당시 국내 흥행 1위를 기록하며 온 나라를 뜨겁게 달궜습니다. 저도 처음엔 "과연 우리 기술로 저게 될까?" 반신반의하며 극장 문을 밀었는데, 첫 액션 시퀀스가 시작되는 순간 그 의심이 산산조각 나버렸습니다.배경: 이무기 전설이 할리우드 한복판으로 걸어 들어온 날영화는 조선 시대 오프닝으로 시작합니다. 천상에서 내려보낸 전사 '부람'이 여의주를 품고 태어난 소녀를 지키려 하지만, 사악한 이무기 '브라퀴' 세력에 쫓기다 결국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하는 내용입니다. 여기서 여의주란 이무기가 용으로 승천하기 위해 반드시 손에 넣어야 하는 천상의 보석으로, ..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연출한 실사 영화 은 2025년 개봉했습니다. 애니메이션 원작의 팬으로서 솔직히 반신반의했는데, 막상 극장을 나오며 든 생각은 "이걸 굳이 실사로 만든 이유가 있었구나"였습니다.고레에다는 왜 룩백을 실사로 찍었나 — 제작 비화이 영화가 어떻게 탄생했는지를 먼저 알고 보면, 극장 안에서 느끼는 감정의 무게가 달라집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후지모토 타츠키의 만화 을 처음 접한 건 신칸센을 타고 도쿄 신아가와 역에 내리던 날, 역 구내 서점 가판대에서였습니다. 책상에 앉아 그림을 그리는 인물의 뒷모습에 이끌려 집어 든 그 만화를 그날 밤 사무실에서 단숨에 다 읽었다고 합니다.고레에다는 당시 코로나 팬데믹으로 촬영이 전면 중단된 상황이었습니다. "영화는 지금 당장 필요 없다"는 분위기..
솔직히 저는 고래 뱃속을 배경으로 한 영화가 이 정도까지 무섭고 아름다울 수 있다는 걸 몰랐습니다. 를 조조로 보고 나왔을 때, 극장 의자 손잡이를 꽉 쥐고 있던 손이 땀으로 젖어 있었어요. 길이 24미터, 무게 60톤의 향유고래 뱃속에서 살아남으려는 한 남자의 사투를 담은 이 작품은, 단순한 서바이벌 스릴러를 한참 넘어서는 경험이었습니다.고래 뱃속이라는 공간 — 살아있는 세트의 공포밀실 스릴러(閉室 thriller)라고 하면 보통 정적인 공간을 떠올립니다. 여기서 밀실 스릴러란 극도로 좁고 폐쇄된 공간 안에서 주인공이 탈출을 시도하며 벌어지는 심리적·신체적 긴장감을 다루는 장르를 말합니다. 이나 같은 작품들이 대표적이죠. 일반적으로 이 장르는 배우의 감정 연기와 심리 묘사로 극을 이끌어간다고 알려져 ..
솔직히 고백하자면, 저는 처음 극장에서 이 영화를 보면서 꽤 오랫동안 무비를 그냥 즐겼습니다. 베네치아의 수로를 박살 내는 물의 엘리멘탈(elemental), 직역하면 '원소 괴물'이 화면을 가득 채울 때만 해도 "이거 그냥 시원한 팝콘 무비네" 하고 넘겼거든요. 그런데 집에 돌아오는 길에 자꾸 뭔가 석연찮은 느낌이 남았습니다. 재미는 있었는데, 뭔가 빠진 것 같은 그 기분. 이 글은 그 석연찮음의 정체를 파헤친 기록입니다.미스테리오가 던진 미디어 비판, 이 영화의 진짜 성취제가 이 영화에서 가장 놀랐던 건 액션이 아니라 악당의 논리였습니다. 미스테리오(mysterio)는 홀로그램(hologram) 기술, 즉 빛과 드론을 조합해 실체 없는 환영을 만들어내는 기술로 가짜 영웅 행세를 합니다. 여기서 홀로그..
육아휴직 중 아이를 재우고 나서 혼자 영화 한 편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막상 뭘 골라야 할지 몰라 스트리밍 화면만 한참 들여다보다 그냥 끄는 날이 꽤 많았습니다. 그러다 결국 고른 게 2008년 개봉작 이었고, 보는 내내 제가 왜 이걸 이제야 봤나 싶었습니다. 무거운 소재를 이렇게 유쾌하게 풀어낼 수 있다는 게 솔직히 예상 밖이었습니다.극장에서 직접 느낀 시청각 카타르시스잘나가는 라디오 DJ 남현수(차태현)의 아파트에 황정남(박보영)이 아들 황기동(왕석현)을 데리고 들이닥치는 오프닝부터 화면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습니다. 36살 라디오 DJ에게 갑자기 22살짜리 딸과 여섯 살짜리 손자가 생겨버린다는 설정은, 자칫 막장 드라마의 소재로 흘러갈 수 있는 위험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강..
극장에서 나오는 길에 옆 사람이 "진짜 잘 만들었다"고 하는데, 저는 조금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영화 은 화산 지수(VEI, Volcanic Explosivity Index) 8등급이라는 사상 초유의 재난을 다룬 작품입니다. 저는 군에서 병기장교로 복무하면서 폭발물과 미사일 해체 절차를 실제로 다뤄봤기 때문에, 극 중 조인창 대위의 손 하나하나가 유독 눈에 밟혔습니다. 그래서 이 글을 씁니다.재난 연출: 스크린을 찢는 화산 폭발, 어디까지 믿을 수 있나영화가 시작되자마자 서울 강남역 일대가 무너져 내립니다. 제가 직접 극장에서 봤을 때, 고층 빌딩이 엿가락처럼 꺾이는 장면에서 등줄기가 서늘해지는 걸 느꼈습니다. 단순한 시각적 충격이 아니라, "이게 정말 일어나면 어떻게 될까"라는 본능적인 공포감..
극장 불이 꺼지고 스크린에 항공모함이 떠오르던 그 순간, 제 심장이 먼저 알아챘습니다. 36년 만에 돌아온 은 속편이 어떻게 전설을 넘어설 수 있는지를 온몸으로 증명한 영화였습니다. 실제 전투기 탑승 촬영이라는 전례 없는 선택이 만들어낸 날것의 쾌감, 그리고 아버지를 잃은 아들과 친구를 잃은 조종사 사이의 감정선. 화려한 액션 너머에 이렇게 따뜻한 서사가 숨어 있을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36년 속편, 향수와 새로움 사이주말 오후 극장 앞 줄을 서면서 문득 걱정이 들었습니다. 36년이라는 세월은 너무 길었고, 속편이 원작의 감동을 망가뜨린 사례를 저는 이미 너무 많이 봐왔으니까요. 그런데 직접 겪어보니, 그 걱정이 완전히 기우였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1986년 원작 은 인도양을 항해하던 항공모함을 ..
스포츠 영화에서 진짜 눈물이 나는 순간은 언제일까요? 저는 주인공이 금메달을 딸 때가 아니라, 뛰어야 할 이유조차 변변치 않은 사람들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점프대에 오르는 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2009년 개봉해 800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 를 다시 꺼내 봤습니다. 극장에서 처음 봤을 때 극 초반의 유쾌한 웃음과 후반부의 벅찬 전율이 뒤섞였던 그 느낌이, 다시 보고 나서도 여전히 선명하게 남아 있었습니다.오합지졸 팀의 언더독 서사, 그 팩트를 짚어보면솔직히 처음 이 영화를 접할 때만 해도, 한국에 스키점프 국가대표 팀이 실제로 있었다는 사실 자체가 낯설었습니다. 영화는 1998년 나가노 동계 올림픽 출전을 목표로 급조된 한국 스키점프 대표팀의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팀의 구성원들은 처음부터 스키점..
속편이 원작을 망친다는 공식, 정말 맞는 말일까요? 극장에서 주토피아 2의 오프닝 추격전이 시작되는 순간, 저도 모르게 그 걱정을 완전히 내려놓게 됐습니다. 9년 만에 돌아온 주토피아 2는 1편의 세계관을 허물지 않고 조심스럽게, 그러면서도 훨씬 깊게 파고들었습니다. 이 글에서는 직접 극장에서 본 경험을 바탕으로, 기대해도 좋은 이유와 냉정하게 짚어야 할 한계를 함께 풀어보겠습니다.세계관 확장 — 포유류 너머로 넓어진 주토피아주토피아 1편이 대단했던 이유 중 하나는 철저한 설계에 있었습니다. 사막 지구 사하라 스퀘어, 툰드라타운, 레인포레스트 디스트릭트, 리틀 로덴시아처럼 기후 생태계별로 구역을 나눠두고, 그 구분 자체가 계층과 편견의 은유로 작동했죠. 1편이 "포식자 대 피식자"라는 틀로 사회의 혐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