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저는 후반부에 거대한 요괴가 직접 등장할 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전반부의 서늘한 심리적 공포에 완전히 사로잡혀 있다가 갑자기 장르가 뒤바뀌는 순간, 당황했던 것도 사실이에요. 장재현 감독의 세 번째 장편 는 풍수지리와 무속 신앙, 일제강점기의 트라우마를 한데 버무린 오컬트 영화로, 개봉 일주일 만에 수십만 명을 동원하며 화제를 모았습니다. 제가 직접 극장에서 체험한 그 압도적인 시청각적 경험과 영화 속 음양오행 논리를 함께 풀어보겠습니다.극장에서 온몸으로 느낀 시각적 체험화면이 켜지자마자 미국의 거대한 저택에 드리운 어두운 그림자가 스크린을 가득 채웠고, 저도 모르게 좌석 등받이에 등을 바짝 붙였습니다. 이 영화가 시작부터 관객의 목을 조여오는 방식은 매우 영리했어요.배경이 한국의 험..
평범한 택시운전사 한 명이 광주로 돌아간다고 도대체 뭐가 달라질까요? 저는 극장에서 이 장면을 보며 그 질문이 스스로에게 칼날처럼 꽂히는 걸 느꼈습니다. 영화 는 1980년 5월, 위르겐 힌츠페터 기자가 5.18 민주화운동의 진실을 전 세계에 알리기까지 그 곁에 있었던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그 평범함이야말로 이 영화를 가장 강력하게 만드는 무기입니다.위르겐 힌츠페터, 그가 없었다면 광주는 지워졌을까5.18을 기억할 때 저는 항상 이 질문부터 떠올립니다. 당시 전두환 정권 치하에서 국내 언론은 제 기능을 완전히 잃은 상태였습니다. 이른바 '땡전 뉴스'로 대표되는 어용 언론(정권의 입맛에 맞게 보도를 왜곡하거나 사실을 은폐하는 언론)이 방송을 장악하고 있었고, 양심 있는 기자가 진실을 보도하..
영화관 불이 꺼지고 첫 장면이 시작되자마자, 저는 팝콘 봉투를 내려놓았습니다. 손이 떨려서가 아니라, 집어들 생각 자체가 사라진 것입니다. 최동훈 감독의 2015년작 은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독립운동 첩보 액션 영화로, 개봉 당시 천만 관객을 돌파한 작품입니다. 아내와 함께 뒤늦게 재관람하면서 처음 봤을 때와는 또 다른 감정이 밀려왔습니다. 역사를 스크린 위에서 이렇게 뜨겁게 마주한 건 오랜만이었습니다.지붕 위 저격수, 안옥윤이 방아쇠를 당기는 순간제가 이 영화를 보면서 가장 심장이 쪼여들었던 장면은 단연 안옥윤의 저격 장면이었습니다. 경성 한복판에서 지붕을 날렵하게 가로지르며 표적을 추적하는 그 장면, 커다란 화면 위에 가득 찬 그녀의 눈빛이 얼마나 서늘하고 단단하던지 저도 모르게 두 주먹을 꽉 쥐..
주말에 넷플릭스를 뒤지다가 아무 생각 없이 틀었는데, 어느 순간 제 눈이 화면에서 떨어지질 않았습니다. 2012년 전국 1,298만 관객을 극장으로 불러들인 최동훈 감독의 입니다. 화려한 캐스팅과 마카오 로케이션만 기억하는 분들도 많은데, 막상 블루레이 코멘터리까지 파고들면 이 영화가 얼마나 치밀하게 만들어졌는지 새삼 놀라게 됩니다. 제가 직접 코멘터리를 듣고 뜯어본 비하인드 정보와 솔직한 감상을 공유합니다.천만 관객을 빨아들인 오프닝, 어떻게 만들어졌을까영화가 시작되자마자 미술관 털이 시퀀스가 터집니다. 예니콜이 얇은 와이어 하나에 몸을 맡기고 건물 외벽을 타는 장면을 보는 순간, 저도 모르게 손에 땀이 맺혔습니다. 알고 보면 이 오프닝은 철저한 계산의 결과물이었습니다.최동훈 감독은 '실제 도둑들도 사..
결말을 이미 아는 영화가 더 재밌을 수 있을까요? 저는 처음엔 반신반의했습니다. 1979년 12월 12일, 딱 9시간 만에 대한민국의 운명이 뒤바뀐 군사반란을 다룬 영화 은 역사책이 먼저 결말을 알려줬는데도 불구하고, 극장 안에서 제 심장을 그 어떤 스릴러보다 거칠게 두드렸습니다.결말을 알면서도 극장을 찾게 만드는 관람법평소 이나 처럼 굵직한 역사를 다룬 묵직한 작품들을 즐겨 챙겨보는 편입니다. 그래서 개봉 소식을 접하자마자 아주 큰 기대를 품고 상영관으로 향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보고 나서 든 첫 생각은, "이 영화는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경험의 밀도가 완전히 달라진다"는 것이었습니다.가장 중요한 준비는 주요 인물들의 소속 관계를 미리 파악해 두는 일입니다. 영화에는 보안사, 수경사, 특전사 등 다양..
20년을 이어온 타짜 시리즈의 마지막 편이 129분짜리 영화로 극장에 걸렸습니다. 저는 개봉 첫 주 심야 상영으로 봤는데, 솔직히 말씀드리면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는 말을 그날 밤 뼛속 깊이 체감했습니다. 뼈대는 분명히 좋습니다. 하지만 그 뼈대를 둘러싼 살점이 너무 많이 발려 나갔어요.벨제붑이라는 제목이 품고 있는 배경트럼프 카드에는 오래된 이야기가 따라다닙니다. 중세 유럽의 성직자들이 스페이드 열 장에 악마의 이름을 하나씩 붙였는데, 에이스가 루시퍼, 2가 벨제붑이었다고 합니다. 하늘에서 쫓겨난 루시퍼와 원래부터 지옥을 다스리던 벨제붑이 지옥의 주인 자리를 두고 도박을 벌였고, 진 벨제붑은 세상에서 가장 더럽고 추악한 존재인 똥파리가 됐다는 이야기입니다. 벨제붑이라는 이름 자체가 히브리어로 '파리의..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새벽 두 시에 혼자 보다가 결국 이불을 뒤집어쓰고 펑펑 울었거든요. 영화 은 1950년대 흥남철수부터 1980년대 이산가족 찾기까지, 격변의 한국 근현대사를 한 남자의 등에 고스란히 얹어놓은 작품입니다. 1,400만 관객을 동원하며 역대 흥행 4위를 기록했지만, 보고 나서 마냥 좋다고만 할 수 없는 지점도 분명히 있었습니다.천만 관객을 만든 비하인드 — 장면 뒤에 숨은 이야기들제가 이 영화를 다시 찾아보게 된 건 순전히 촬영 비화 때문이었습니다. 알고 보니 스크린에 보이는 것 대부분이 치밀한 사전 작업의 결과물이더군요.흥남철수 장면부터 그렇습니다. 흥남철수(1950년 12월, 중공군의 남하를 피해 피난민 수만 명이 미군 함선에 탑승해 탈출한 역사적 사건)를 재현하기 위해 ..
영화관을 나오면서 눈이 퉁퉁 부어본 경험이 있으신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오랜만에 그런 영화를 만났습니다. 이지원 감독의 신작 이었는데, 미쓰백을 만든 감독이라는 것 하나만으로도 기대가 컸고 그 기대는 거의 빗나가지 않았습니다. 화투패 '비광'이라는 소재 하나에서 이렇게 묵직한 이야기를 끌어낼 수 있다는 것이 솔직히 예상 밖이었습니다.황준구라는 인물, 비광의 의미부터 이해해야 한다야구 팬이 아니면 '비광'이라는 단어 자체가 낯설 수도 있습니다. 비광(非光)이란 화투패에서 광(光) 점수를 내지 못하는 패, 즉 가장 빛나는 자리에서 끝내 배제된 패를 뜻합니다. 쉽게 말해 아무리 잘 싸워도 주인공이 되지 못하는 존재를 가리킵니다. 영화 속 황준구가 자신의 왼팔에 이 문양을 새긴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