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준호 감독의 2009년작 ‘마더’는 개봉 당시 김혜자와 원빈이라는 조합만으로도 화제였지만, 정작 영화가 던지는 질문은 훨씬 불편한 곳을 향하고 있었습니다. 모성애라는 가장 신성한 감정이 얼마나 맹목적이고 위험해질 수 있는가. 이 영화를 다시 보면 가장 오래 남는 건 눈물이나 감동이 아니라, 끝내 정리되지 않는 어떤 불편함이었습니다.모성애가 아닌 맹목적 사랑의 민낯영화 ‘마더’에서 엄마(김혜자 분)는 지적장애를 가진 아들 도준(원빈 분)이 살인 누명을 쓰자 직접 사건을 파헤칩니다. 형사에게 사정하고, 장례식장에 찾아가 뺨을 맞으면서도 전단지를 돌리고, 심지어 진태의 집에 몰래 들어가 증거를 뒤집니다. 이 장면들을 보면 처음엔 안타까운데, 시간이 갈수록 안타까움보다 불안감이 커졌습니다.봉준호 감독은 이 영..
곡성을 처음 본 관객 중 열에 아홉은 "이게 무슨 결말이야"라고 중얼거렸을 겁니다. 저도 똑같았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찝찝한 기분이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는 거였습니다. 그래서 여러 해석을 찾아보며 이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곡성이 왜 이렇게 사람을 붙잡는지, 그리고 왜 누군가에게는 최고작이고 누군가에게는 최악인지, 영화를 다시 보고 나서야 겨우 정리된 생각을 꺼내놓겠습니다.모호함의 설계 — 이 영화가 의도적으로 답을 숨긴 이유곡성이 2016년 개봉했을 때 평론가들의 반응은 그 어떤 한국 영화보다 극단적으로 갈렸습니다. 영화 평론가 이동진은 10점 만점을 주며 "무시무시하다"고 했고, 같은 해 정성일은 "최악의 영화"라고 혹평했습니다. 두 사람이 같은 영화를 보고 이렇게 다른 말을 할 수 있다는 게 처..
육아휴직 중 아이를 재운 뒤 홀로 거실에 앉아 우민호 감독의 영화 을 다시 틀었습니다. 군에서 정비중대장으로 일하던 시절, 조직의 논리와 보이지 않는 위계 속에서 부딪히던 기억이 화면 위로 겹쳐졌습니다. 이 영화는 단순한 범죄 스릴러가 아닙니다. 대한민국 권력 구조의 민낯을 해부한 고발장에 가깝습니다.아이를 재운 밤, 군 시절이 떠오른 이유제가 정비중대장으로 복무할 때 가장 힘들었던 건 전투나 훈련이 아니었습니다. 원칙대로 처리하려는 일이 조직의 생리와 충돌할 때, 그 보이지 않는 벽이었습니다. 보고 체계, 인맥, 묵시적 위계. 실력보다 줄이 중요한 순간들이 분명히 있었고, 영화 속 우장훈 검사를 보면서 그 감각이 되살아났습니다. 그는 경찰 출신에 지방대 졸업이라는 이유로 끌어주는 인맥, 즉 조직 내 비..
올드보이가 개봉한 지 올해로 정확히 20년이 됩니다. 이 영화를 다시 틀었는데, 불을 끄고 화면만 마주한 채 처음 봤을 때와 똑같이 서늘해졌습니다. 20년이 지나도 이 영화가 주는 압도감은 조금도 희석되지 않았습니다.올드보이가 지금도 회자되는 배경2003년 칸 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대상을 수상한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는 동명의 일본 만화를 원작으로 하지만, 영화적 완성도는 원작을 훌쩍 뛰어넘는다는 평가를 받아 왔습니다. 다시 볼수록 이야기의 설계가 너무 정교해서, 이게 정말 오락 영화인가 싶은 생각이 들었거든요.영화 제목 올드보이(Old Boy)는 직역하면 '나이 든 소년'이지만, 영어권에서는 졸업생 혹은 동창생이라는 뜻으로도 쓰입니다. 이 중의성(重義性), 즉 하나의 단어가 두 가지 이상의 의미를 동시에..
육아휴직 중 딸아이가 일찍 잠든 평일 저녁, 오랜만에 영화 한 편을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 봤습니다. 고른 작품은 였고, 화면 속 세계는 제 현실과 정반대로 차갑고 치열했습니다. 거대 범죄 기업 '골드문'의 후계자 구도를 둘러싼 권력 다툼과, 그 한가운데 놓인 잠입 경찰 이자성의 선택을 다룬 이 영화는 다 보고 나서도 한동안 멍하게 앉아 있게 만들었습니다.골드문 후계자 구도 — 회장 사망부터 이사회까지영화는 골드문 회장 석동출이 내연녀를 만나러 가던 중 의문의 사고로 사망하면서 시작됩니다. 골드문은 전국구 조직인 재범본파, 제1파, 북대문파가 합쳐 탄생한 국내 최대 규모의 기업형 범죄 조직입니다. 여기서 '기업형 범죄 조직'이란 단순한 폭력 조직이 아니라 건설·유통·엔터테인먼트 같은 합법적 사업 구조를 외..
베테랑 2는 개봉 41일 만에 누적 관객 700만 명을 돌파한 2024년 추석 최대 화제작입니다(출처: 영화진흥위원회 박스오피스). 육아휴직 1년 만에 은빛 님과 함께 잡은 극장 표였는데, 솔직히 처음엔 전편처럼 시원하게 웃고 나오는 오락 영화인 줄 알았습니다. 그게 아니었습니다.액션 연출 — 비 오는 옥상부터 남산 계단까지오프닝이 켜지는 순간, 서도철 형사(황정민 배우)가 유쾌하게 도박장을 소탕하는 장면이 펼쳐졌습니다. 모처럼 딸 재우고 나온 극장이었는데, 처음 5분은 그냥 편하게 웃으면서 봤어요. 전편 분위기 그대로 이어지는 줄 알았으니까요.그런데 해치(Hache)가 등장하면서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해치란 사적 제재자를 가리키는 극중 별명으로, 법의 심판을 피해 간 범죄자들을 피해자와 똑같은..
부르즈 할리파(Burj Khalifa), 높이 829미터. 서울 북한산 정상(836미터)과 거의 맞먹는 이 거대한 콘크리트 덩어리를 톰 크루즈가 와이어 하나에 의지해 맨몸으로 기어오릅니다. 처음 이 장면을 봤을 때 저는 손바닥에 땀이 흥건하게 배어 나오는 걸 느꼈습니다. 1년간의 육아휴직 끝에 늦은 밤 아이를 재우고 마주한 스크린이었는데, 그 피로가 싹 날아갈 만큼 강렬한 첫 경험이었습니다.부르즈 할리파 등반과 아이맥스 연출이 만든 압도감일반적으로 할리우드 대작의 아찔한 고층 액션 장면은 상당 부분 CG(컴퓨터 그래픽)로 처리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제작진도 처음엔 같은 높이의 세트장을 짓고 후반 작업으로 마무리하려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실제로 이 영화를 보고 나면, 톰 크루즈가 그 제안을 직접 거절했..
개봉 첫 주 북미 박스오피스 2억 6천만 달러. 역대 MCU 오프닝 3위를 기록한 을 저는 1년간의 육아휴직 중에 모처럼 극장 의자에 앉아 봤습니다. 젖병 소독과 기저귀 교체가 일상이던 제게, 그 2시간 30분은 그야말로 심장이 멈추는 줄 알았던 시간이었습니다. 이 영화가 단순한 팬 서비스 이벤트냐, 아니면 진짜 완결된 서사냐를 두고 보는 시각이 갈리는데, 직접 체험한 입장에서 솔직하게 풀어보겠습니다.성장 서사: 철없던 소년이 진짜 영웅이 되기까지톰 홀랜드의 피터 파커가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에 처음 등장한 건 였습니다. 그때부터 이 캐릭터는 줄곧 아이언맨의 그늘 아래 있었고, 스스로 결정하고 책임지는 영웅이라기보다는 어른들에게 이끌려 다니는 10대에 가까웠습니다. 저는 홈커밍과 파 프롬 홈을 ..
솔직히 저는 육아휴직 중에 이 영화를 볼 줄 몰랐습니다. 아이가 낮잠 드는 틈에 극장 한 번 가보자고 혼자 슬쩍 나섰던 그 오후, 히말라야라는 두 글자가 스크린 가득 터지는 순간부터 저는 온수동 우리 집 따뜻한 방 안에 있다는 사실을 완전히 잊어버렸습니다. 2015년 개봉작 는 산악인 엄홍길과 박무택의 실화를 바탕으로, 산에 남겨진 동료를 데려오기 위해 다시 지옥으로 올라간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입니다.대자연 묘사: 스크린이 찢어질 것 같았습니다제가 직접 극장에서 봤는데, 오프닝부터 예사롭지 않았습니다. 하얀 입김이 얼어붙는 영하 40도의 오프닝 씬에서 스피커를 찢는 듯한 칼바람 소리가 울려 퍼지는 순간, 저도 모르게 몸을 움츠렸습니다. 1년째 아이 기저귀 갈고 이유식 끓이던 사람에게, 그 첫 장면..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연출한 실사 영화 은 2025년 개봉했습니다. 애니메이션 원작의 팬으로서 솔직히 반신반의했는데, 막상 극장을 나오며 든 생각은 "이걸 굳이 실사로 만든 이유가 있었구나"였습니다.고레에다는 왜 룩백을 실사로 찍었나 — 제작 비화이 영화가 어떻게 탄생했는지를 먼저 알고 보면, 극장 안에서 느끼는 감정의 무게가 달라집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후지모토 타츠키의 만화 을 처음 접한 건 신칸센을 타고 도쿄 신아가와 역에 내리던 날, 역 구내 서점 가판대에서였습니다. 책상에 앉아 그림을 그리는 인물의 뒷모습에 이끌려 집어 든 그 만화를 그날 밤 사무실에서 단숨에 다 읽었다고 합니다.고레에다는 당시 코로나 팬데믹으로 촬영이 전면 중단된 상황이었습니다. "영화는 지금 당장 필요 없다"는 분위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