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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성 리뷰 (모호함, 믿음과 불신, 불가지론)

온수동지구인 2026. 10. 27. 21:00

목차


    곡성을 처음 본 관객 중 열에 아홉은 "이게 무슨 결말이야"라고 중얼거렸을 겁니다. 저도 똑같았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찝찝한 기분이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는 거였습니다. 그래서 여러 해석을 찾아보며 이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곡성이 왜 이렇게 사람을 붙잡는지, 그리고 왜 누군가에게는 최고작이고 누군가에게는 최악인지, 영화를 다시 보고 나서야 겨우 정리된 생각을 꺼내놓겠습니다.



    모호함의 설계 — 이 영화가 의도적으로 답을 숨긴 이유

    곡성이 2016년 개봉했을 때 평론가들의 반응은 그 어떤 한국 영화보다 극단적으로 갈렸습니다. 영화 평론가 이동진은 10점 만점을 주며 "무시무시하다"고 했고, 같은 해 정성일은 "최악의 영화"라고 혹평했습니다. 두 사람이 같은 영화를 보고 이렇게 다른 말을 할 수 있다는 게 처음엔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영화를 다시 보고 나서야 그 이유가 보였습니다. 이 영화는 애초에 완전한 해석이 불가능하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나홍진 감독이 사용한 방식을 영화 이론에서는 서사적 불확정성(narrative indeterminacy)이라고 부릅니다. 여기서 서사적 불확정성이란, 텍스트 안에 의도적으로 해소되지 않는 공백을 심어두어 관객이 스스로 의미를 채우도록 유도하는 기법입니다. 일반적인 모호한 영화와 다른 점은, 곡성의 경우 어떤 해석을 가져와도 반드시 어딘가에서 논리적 모순이 생긴다는 데 있습니다. 외지인이 악마라고 보면 무명의 행동이 이상해지고, 외지인이 신이라고 보면 굿판 장면의 흐름이 뒤틀립니다.

    영화를 다시 보며 가장 당혹스러웠던 건 일광과 외지인의 주술이 교차 편집되는 굿판 장면이었습니다. 처음 볼 때는 완전히 속았습니다. 두 세력이 맞붙는 대결 구도로 읽혔고, 종구가 굿판을 엎어서 일광이 실패했다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일광 차량에서 피해자들의 사진이 나오는 순간, 방금 제가 구축했던 해석의 구조가 와르르 무너졌습니다. 이 경험 자체가 감독이 의도한 것이라는 걸 그제야 알았습니다.

    곡성의 이 구조를 두고 "알맹이 없는 빈 껍질"이라는 비판도 있고, "자유로운 해석의 장"이라는 옹호도 있습니다. 저는 겉모습만 화려하고 알맹이가 비어 있다는 비판이 충분히 설득력 있다고 봅니다. 실제로 장르적 완성도만 놓고 보면 원인과 결과가 일치하지 않는 장면이 적지 않고, 후반부로 갈수록 공권력의 세계가 마치 없는 것처럼 증발해버리는 부분은 개연성 문제를 피하기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이 영화에 7점 이상은 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미장센과 에너지, 그리고 관객 스스로를 의심하게 만드는 실험적 태도는 쉽게 깎아내릴 수 없는 힘이기 때문입니다.

    • 서사적 불확정성: 어떤 해석을 대입해도 모순이 발생하도록 설계된 구조
    • 굿판 교차 편집: 관객을 의도적으로 오독하게 만드는 핵심 장치
    • 일광의 캐릭터: 살아 움직이는 미끼로, 오해를 유발하는 떡밥의 진원지
    • 개연성 부재: 후반부 공권력 소멸 등 장르적 완성도의 실질적 약점
    요약: 곡성은 의도적으로 완전한 해석이 불가능하도록 설계된 영화이며, 이 모호함은 극찬과 혹평 양쪽의 논거가 동시에 된다.

     

    믿음과 불신, 그리고 불가지론 — 종구와 우리가 함께 빠진 함정

    영화를 다시 보면서 제가 가장 오래 멈춰 생각한 장면은 종구와 무명의 대화였습니다. 무명은 "그냥 믿으라"고 하고, 종구는 "알아야 믿는 것 아니냐"고 받아칩니다. 이 짧은 교환이 이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 종구는 내내 안다고 착각한 채 행동합니다. 외지인의 집에서 제단과 피해자 사진을 보고 나서 외지인이 원흉이라고 확신해버렸고, 그 확신은 이후 모든 판단을 오염시킵니다.

    여기서 인지 편향(cognitive bias) 개념을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습니다. 인지 편향이란 인간이 정보를 처리할 때 자신이 이미 믿고 싶은 방향으로 증거를 해석하고 반대 증거는 무시하는 심리적 오류를 말합니다. 종구의 행동이 정확히 이 패턴입니다. 경찰임에도 수사 절차를 일절 밟지 않고, 외지인의 집에 두 번씩이나 찾아가 협박하고 개를 죽이는 행동은 상식을 잃은 사람의 것입니다. 영화를 보며 가장 안타까웠던 지점도 바로 이 부분이었습니다. 아버지로서 딸을 지키려는 본능은 이해되는데, 그 본능이 잘못된 믿음과 결합하는 순간 되돌릴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가버리더군요.

    외지인이 마지막 동굴 장면에서 이삼에게 하는 말도 같은 맥락입니다. "말해봐야 뭐 하겠냐, 어차피 믿지 않을 거니까." 이 대사는 이 영화가 관객에게 던지는 직접적인 선고처럼 들렸습니다. 철학적으로 이 태도를 불가지론(agnosticism)이라고 부릅니다. 불가지론이란 어떤 진리나 실체는 인간의 인식 능력으로는 결코 알 수 없다는 입장입니다. 나홍진 감독은 이 불가지론적 세계관을 곡성 전체에 깔아두고, 우리가 관객으로서 얼마나 쉽게 잘못된 확신에 빠지는지를 체험하게 만들었습니다. 실제로 영화를 본 뒤 여러 해설 영상을 찾아보며 "이게 답이다"라는 확신을 몇 번이나 가졌다가 버렸는지 모릅니다.

    양자역학의 불확정성 원리(Heisenberg's uncertainty principle)도 이 맥락에서 떠올립니다. 불확정성 원리란 입자의 위치와 운동량을 동시에 정확하게 측정하는 것이 원리적으로 불가능하다는 물리 법칙인데, 이를 인식론에 확장하면 우리가 어떤 대상을 완전히 안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곡성은 바로 이 지점을 영화 언어로 구현하려 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물론 그 시도가 장르적 완성도의 희생을 동반했다는 점은 부정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안다고 믿는 순간이 가장 크게 오해하는 순간"이라는 메시지만큼은 제게 분명하게 전달되었습니다.

    제 경험상 이 영화는 혼자 보는 것보다 다 본 뒤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눠볼 때 진가가 드러납니다. 같은 장면을 보고도 전혀 다른 해석을 꺼내놓는 과정에서, 우리가 얼마나 각자의 인지 편향대로 영화를 읽었는지 새삼 확인하게 되거든요. 그게 곡성이 설계한 함정의 완성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 영화진흥위원회의 통계에 따르면 곡성은 개봉 당시 누적 관객 688만 명을 기록했으며, 상업적 성과와 평단의 극단적 갈림이 동시에 나타난 이례적 사례로 분류됩니다.

    요약: 종구의 잘못된 믿음은 인지 편향의 전형적 패턴이며, 곡성 전체는 관객이 스스로 그 함정에 빠지도록 설계된 불가지론적 실험이다.

     

    자주 묻는 질문

    Q. 곡성 외지인 정체가 악마인가요, 신인가요?

    A. 영화는 의도적으로 답을 주지 않습니다. 외지인을 악마로 볼 경우 곡성 주민들을 타락시킨 존재가 되고, 메시아로 볼 경우 종구가 구원을 외면한 이야기가 됩니다. 어느 쪽으로 해석해도 반드시 어딘가에서 모순이 발생하는 구조이기 때문에, 정답을 찾으려는 시도 자체가 이 영화의 함정에 걸려드는 과정입니다.

     

    Q. 무명은 선한 존재인가요?

    A. 무명을 곡성이라는 자연 자체의 원시 신으로 보는 해석이 가장 모순이 적습니다. 원시 신앙에서 신은 선악과 무관하게 자신의 영역을 지키는 존재로 기능합니다. 무명이 종구를 말리고 외지인을 추적한 것은 곡성을 보호하려는 목적으로 읽히지만, 그것이 곧 인간적 의미의 선함을 뜻하지는 않습니다.

     

    Q. 곡성 굿판 장면에서 일광이 날린 살은 누구를 향한 건가요?

    A. 처음 보면 외지인을 공격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일광이 장승(마을 수호신)에 말뚝을 박는 장면을 감안하면 무명을 향한 공격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외지인과 일광이 한패라는 단서들이 후반에 드러나기 때문에, 두 세력이 함께 무명을 무력화하려 했다는 해석이 성립합니다. 단, 이 경우에도 해소되지 않는 의문이 남습니다.

     

    Q. 곡성은 결국 호평받는 영화인가요, 아닌가요?

    A. 평론가들 사이에서도 극단적으로 갈린 작품입니다. 이동진이 10점을 줄 때 정성일은 최악이라 했을 만큼 의견 대립이 심했습니다. 장르적 완성도보다 실험적 태도를 높이 사는 관객에게는 수작이고, 인과관계와 구조적 정합성을 중시하는 관객에게는 졸작으로 보일 수 있는, 양쪽 평가가 모두 근거 있는 영화입니다.

     

    결론

    제가 곡성을 보고 내린 결론은 이렇습니다. 알맹이는 있습니다. 다만 그 알맹이는 외지인의 정체나 무명의 목적 같은 서사적 답이 아니라, 관객 자신이 얼마나 쉽게 잘못된 확신에 빠지는지를 체험하게 만드는 구조 그 자체입니다. 이 영화를 보고 나서 열심히 해석을 찾아다닌 뒤 "이게 답이다"라고 느끼는 순간, 우리는 정확히 종구가 외지인을 향해 확신을 가졌던 그 순간과 같은 상태에 있는 겁니다.

    장르 영화로서의 완성도를 기준으로 삼는다면 저는 7점을 주겠습니다. 하지만 관객의 인식을 실험 대상으로 삼은 시도의 과감함을 함께 평가한다면, 그 점수보다는 조금 더 올라갑니다. 곡성을 아직 못 본 분이라면 일단 아무 해석도 찾지 말고 한 번 보시길 권합니다. 제 경험상 사전 정보 없이 보는 것과 해석을 알고 보는 것은 완전히 다른 영화입니다. 그리고 다 보고 나서 찝찝하다면, 그게 바로 이 영화가 제대로 작동했다는 증거입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BmFUYjee0R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