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목차

개봉 첫 주 북미 박스오피스 2억 6천만 달러. 역대 MCU 오프닝 3위를 기록한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을 저는 1년간의 육아휴직 중에 모처럼 극장 의자에 앉아 봤습니다. 젖병 소독과 기저귀 교체가 일상이던 제게, 그 2시간 30분은 그야말로 심장이 멈추는 줄 알았던 시간이었습니다. 이 영화가 단순한 팬 서비스 이벤트냐, 아니면 진짜 완결된 서사냐를 두고 보는 시각이 갈리는데, 직접 체험한 입장에서 솔직하게 풀어보겠습니다.
성장 서사: 철없던 소년이 진짜 영웅이 되기까지
톰 홀랜드의 피터 파커가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에 처음 등장한 건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였습니다. 그때부터 이 캐릭터는 줄곧 아이언맨의 그늘 아래 있었고, 스스로 결정하고 책임지는 영웅이라기보다는 어른들에게 이끌려 다니는 10대에 가까웠습니다. 저는 홈커밍과 파 프롬 홈을 보면서도 피터가 여전히 반쪽짜리 영웅처럼 느껴진다는 아쉬움을 내내 갖고 있었거든요.
노 웨이 홈은 바로 그 지점을 정면으로 건드립니다. 신원이 폭로된 피터가 닥터 스트레인지에게 주문을 요구하는 장면부터, 솔직히 답답하기는 합니다. 주문을 외우는 도중에 계속 말을 걸어 마법을 망가뜨리는 건 아무리 고등학생이라도 영웅으로서의 판단력이 너무 부족해 보인다는 시각도 충분히 있을 수 있어요. 저도 처음엔 그렇게 느꼈습니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그 미숙함이 이 영화의 핵심 설계인 것 같습니다. 성장 서사(캐릭터가 시련을 거쳐 정신적·도덕적으로 성숙해지는 이야기 구조)가 완성되려면 주인공이 초반에 실수를 저질러야 하니까요. 메이 숙모의 죽음 앞에서 오열하는 피터, 그 직전에 숙모가 건네는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는 대사는 그래서 더욱 무겁게 꽂힙니다. 육아휴직 중이던 저는 그 장면에서 곤히 잠든 딸아이 얼굴이 겹쳐 보이면서, 누군가를 지킨다는 게 어떤 무게인지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영화 초반부터 대학 입시 실패, 친구들에게 번진 피해, 가족의 죽음까지 이어지는 흐름은 <홈커밍>의 홈커밍 파티, <파 프롬 홈>의 수학여행과 이어지는 고등학교 3년의 마침표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홀로 옥탑방에서 검정고시를 준비하며 새 슈트를 꿰매는 피터의 뒷모습은, 레이디 버드의 엔딩처럼 쓸쓸하지만 단단한 홀로서기의 시작으로 읽혔습니다.
멀티버스: 팬심을 건드리는 설계, 그 빛과 그림자
멀티버스(multiverse)란 우리가 사는 우주 외에 또 다른 우주가 병렬로 존재한다는 개념입니다. SF에서 오랫동안 쓰인 개념인데, MCU는 이 노 웨이 홈을 통해 이 설정을 본격적으로 대중에게 각인시켰습니다. 닥터 스트레인지의 주문이 실패하면서 각기 다른 평행 우주의 악당들이 한 자리에 소환되는 것이 이 영화의 출발점입니다.
제가 이 영화에서 가장 전율했던 순간은, 네드가 마법 반지를 통해 포털을 열고 앤드류 가필드가 어둠 속에서 걸어 나오던 그 수 초였습니다. 시사회에서 박수가 터졌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도 실감하지 못했는데, 제가 본 상영관도 정확히 그 장면에서 탄성이 터졌습니다. 그리고 토비 맥과이어가 등장하자 저는 2002년 어린 시절 극장에서 처음 스파이더맨을 봤던 기억이 순식간에 떠올랐어요. 20년이라는 시간이 한꺼번에 밀려오는 느낌이었습니다.
다만 이 멀티버스 설계가 모든 관객에게 동등하게 작동하지는 않는다는 점은 냉정하게 짚어야 한다고 봅니다. 샘 레이미 감독의 스파이더맨 3부작과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2부작을 모두 본 관객이라면 100%의 감동을 느낄 수 있지만, 배경지식 없는 관객에게 세 피터 파커의 재회 장면은 낯선 아저씨들의 눈물로만 보일 수 있습니다. 이를 "진입 장벽이 높다"고 비판하는 시각도 있는데, 저는 그 비판이 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출처: Rotten Tomatoes에서 관객 점수 98%를 기록했음에도, 평론가 점수와의 온도차가 그 간극을 방증합니다.
세 명의 스파이더맨이 각자의 개성을 드러내는 장면들은 제작진이 이 캐릭터를 정말 깊이 이해하고 있다는 증거였습니다. 누군가 "거미줄 좀 제거해 달라"고 부탁하자 자존심을 내려놓고 천장으로 기어오르는 앤드류, 허리가 아프다는 토비의 등을 풀어주는 앤드류, 이 장면들은 단순 개그가 아니라 스파이더맨이라는 캐릭터의 본질인 '친절한 이웃'을 세 배우 모두에게서 동시에 보여주는 설계입니다. 각 시리즈에서 스파이더맨의 핵심 특징을 비교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토비 맥과이어 버전: 신체에서 직접 거미줄이 나오는 오가닉 웹 슈터, 샘 레이미 특유의 코믹북 톤, 가장 나이 들고 여유로운 선배 포지션
- 앤드류 가필드 버전: 기계식 웹 슈터 사용, 가장 감정선이 풍부하며 MJ 추락 장면에서의 연기가 이 영화 최고의 명장면을 만들어 냄
- 톰 홀랜드 버전: MCU 세계관과 연계된 하이테크 슈트, 가장 어리고 미숙하지만 이 영화에서 진짜 스파이더맨으로 성장하는 주인공
팬 서비스를 넘은 것들: 세컨드 찬스라는 테마
이 영화를 단순한 팬 서비스 이벤트로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다르게 읽었습니다. 노 웨이 홈의 가장 중요한 테마는 세컨드 찬스(second chance), 즉 두 번째 기회입니다. 이 영화에서 피터는 과거 시리즈의 악당들을 단순히 처치하는 게 아니라, 그들의 병을 고쳐 구원하려 합니다. 닥터 옥토퍼스(오토 옥타비우스 박사)의 기계 팔을 제어하는 칩을 수리해 그를 온화한 과학자로 되돌리고, 일렉트로의 불안정한 에너지를 안정시켜주는 방식입니다.
이 설계가 말하는 것은 이겁니다. 그들을 악하게 만든 건 타고난 본성이 아니라 사고와 상황이었다는 것. 그리고 그 두 번째 기회는 피터 자신에게도 해당됩니다. 세상이 피터 파커라는 존재를 완전히 잊게 된 결말에서, 피터는 처음부터 다시 시작합니다. 학적도 없고, 친구도 없고, 연인도 자신을 기억하지 못하지만 그는 여전히 스파이더맨입니다.
저는 MJ가 기억을 잃었음에도 피터를 보며 눈을 떼지 못하는 마지막 장면에서, 닥터 스트레인지가 영화 중반에 했던 말이 다시 겹쳤습니다. "인간의 본성과 운명은 바뀌지 않는다"는 대사입니다. 기억이 지워져도 서로에게 끌리는 본성은 남아 있다는 것. 그래서 피터의 선택은 비극이 아니라 가능성으로 읽힙니다. 출처: Box Office Mojo에 따르면 이 영화는 전 세계 18억 달러를 돌파했는데, 그 흥행의 근거가 단순 향수가 아닌 이 탄탄한 테마에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다만 빌런들 중 리저드(커트 코너스 박사)는 거의 존재감 없이 사라졌다는 점은 짚어야 합니다. 시니스터 식스(sinister six)라는 집단 구성 자체가 워낙 많은 캐릭터를 한 화면에 밀어 넣은 터라, 모든 인물에게 고른 서사 분량을 배분하는 건 물리적으로 어려웠을 겁니다. 여기서 시니스터 식스란 스파이더맨의 숙적인 여섯 악당이 연합하는 마블 코믹스의 빌런 팀을 의미합니다. 빌런을 여럿 등장시키는 슈퍼히어로 영화의 고질적 과부하 문제가 이 작품에서도 완전히 피해 가지는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윌렘 대포의 그린 고블린은 압도적이었습니다. 피터에게 두들겨 맞으면서도 미소를 지우지 않는 그 장면은, 조커 이후 슈퍼히어로 장르에서 가장 소름 돋는 빌런 연기라고 해도 제 경험상 과언이 아닙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 전편 안 봐도 재밌나요?
A. 이 영화만 봐도 기본 줄거리는 따라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과거 스파이더맨 시리즈를 보지 않으면 클라이맥스의 감동이 절반 이하로 줄어들 수 있다는 시각도 분명히 있습니다. 저는 샘 레이미 시리즈와 어메이징 스파이더맨을 전부 본 상태였는데, 그게 없었다면 토비와 앤드류의 재등장이 그토록 뭉클하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가능하다면 다섯 편을 먼저 보고 오시는 편이 훨씬 좋다고 봅니다.
Q. 멀티버스가 무슨 뜻이에요? 이 영화에서 어떻게 쓰이나요?
A. 멀티버스(multiverse)란 우리 우주 외에 또 다른 우주가 동시에 존재한다는 개념입니다. 쉽게 말해 "다른 평행 세계"라고 보면 됩니다. 이 영화에서는 닥터 스트레인지의 마법이 실패하면서 다른 우주의 악당들이 MCU 세계로 넘어오는 게 핵심 갈등입니다. 이후 MCU는 이 설정을 완다비전,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 등으로 계속 이어갑니다.
Q. 앤드류 가필드가 MJ 잡는 장면이 왜 그렇게 감동적인 건가요?
A.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2에서 앤드류의 피터는 연인 그웬 스테이시를 같은 방식으로 추락에서 구하지 못해 잃었습니다. 그 과거를 알면 이 장면에서 앤드류가 전력을 다해 MJ를 잡아내는 행동이 단순 액션이 아닌, 10년 전의 상처를 조금이나마 되돌리는 순간으로 읽힙니다. 제가 그 장면에서 왈칵 눈물이 쏟아진 이유도 바로 그겁니다. 과거 시리즈를 아는 사람에게만 온전히 전달되는 감동이라는 점이 이 영화의 강점이자 한계입니다.
Q. 쿠키 영상 꼭 봐야 하나요?
A. 두 편 모두 MCU 다음 행보를 예고하는 중요한 단서를 담고 있습니다. 첫 번째 쿠키는 베놈의 심비오트 일부가 MCU 세계에 남는 장면으로, 향후 스파이더맨 서사의 복선입니다. 심비오트(symbiote)란 숙주에 달라붙어 함께 사는 외계 생명체로, 흔히 검은 슈트 스파이더맨이나 베놈의 기원이 됩니다. 두 번째 쿠키는 닥터 스트레인지 속편의 예고편 성격입니다. 앉아서 두 편 다 보고 나오시길 권합니다.
결론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은 화려한 팬 서비스 이벤트라는 평가와, 스파이더맨 20년을 완결 짓는 진지한 성장 서사라는 평가가 공존하는 작품입니다. 저는 둘 다 맞다고 생각합니다. 이 영화는 분명히 과거 시리즈를 아는 사람에게 유리하게 설계되어 있고, 피터의 초반 행동이 지나치게 이기적으로 보인다는 비판도 충분히 납득합니다. 그럼에도 메이 숙모를 잃고 모두의 기억에서 스스로를 지우는 피터의 선택은, MCU에서 가장 묵직한 희생 중 하나로 남을 것 같습니다.
육아휴직 중에 잠깐 틈을 내 본 영화였는데, 집에 돌아오는 내내 멍했습니다. 그리고 딸아이를 다시 품에 안으면서,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기 위해 치르는 대가가 어떤 것인지 한참 생각했습니다. 좋은 영화는 그렇게 일상에 남는 것 같습니다. 이 영화를 아직 보지 않으셨다면, 가능하면 과거 스파이더맨 시리즈를 모두 챙겨 보신 뒤에 마지막으로 이 작품을 보시길 추천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