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목차

솔직히 고백하자면, 저는 처음 극장에서 이 영화를 보면서 꽤 오랫동안 무비를 그냥 즐겼습니다. 베네치아의 수로를 박살 내는 물의 엘리멘탈(elemental), 직역하면 '원소 괴물'이 화면을 가득 채울 때만 해도 "이거 그냥 시원한 팝콘 무비네" 하고 넘겼거든요. 그런데 집에 돌아오는 길에 자꾸 뭔가 석연찮은 느낌이 남았습니다. 재미는 있었는데, 뭔가 빠진 것 같은 그 기분. 이 글은 그 석연찮음의 정체를 파헤친 기록입니다.
미스테리오가 던진 미디어 비판, 이 영화의 진짜 성취
제가 이 영화에서 가장 놀랐던 건 액션이 아니라 악당의 논리였습니다. 미스테리오(mysterio)는 홀로그램(hologram) 기술, 즉 빛과 드론을 조합해 실체 없는 환영을 만들어내는 기술로 가짜 영웅 행세를 합니다. 여기서 홀로그램이란 레이저나 컴퓨터 연산으로 3차원 입체 이미지를 공간에 투사하는 기술로, 영화 속에서는 수백 명의 팀원이 뒤에서 운용하는 거대한 속임수 장치로 묘사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걸 믿었습니다. 아이언맨이 사라진 자리에, 영웅처럼 보이는 누군가가 나타났고, 대중은 확인도 하기 전에 열광했습니다. 영화 속 미스테리오의 대사가 지금도 귀에 맴돕니다. "사람들은 믿고 싶었던 것에 속는다"는 그 한마디가요. 제가 직접 그 장면을 극장에서 들었을 때, 솔직히 등골이 서늘해졌습니다. 현실에서도 딱 저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게 너무나 명확하게 느껴졌거든요.
영화는 여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위기의 순간에도 스마트폰을 들고 스트리밍(streaming), 즉 인터넷을 통해 영상을 실시간으로 송출하는 행위를 멈추지 않는 군중, 눈앞에서 사람이 쓰러지는데도 카메라 렌즈를 먼저 들이대는 사람들, 그리고 조작된 영상 하나로 순식간에 영웅이 범죄자가 되는 결말까지. 이 영화가 가짜 뉴스와 미디어 리터러시(media literacy), 즉 미디어가 전달하는 정보를 비판적으로 읽어내는 능력의 중요성을 얼마나 날카롭게 파고드는지, 뒤늦게 깨닫고 나서야 저는 이 영화를 다시 보게 됐습니다.
출처: Pew Research Center 자료에 따르면, 미국 성인의 50% 이상이 '조작된 정보가 민주주의에 큰 위협'이라고 응답했습니다. 미스테리오가 구현한 가짜 영웅 서사는 단순한 영화 속 설정이 아니라 지금 이 시대의 자화상에 가깝습니다.
또 하나 인상 깊었던 건 스파이더 센스(spider-sense)의 성장 서사였습니다. 스파이더 센스란 위험을 감지하는 스파이더맨 특유의 초인적인 직감으로, 영화에서는 '피터 찌릿찌릿'이라는 표현으로 등장합니다. 메이 숙모가 총알은 피하면서 바나나는 못 피한다며 능력의 불안정함을 콕 집어 말해주는 장면은, 아직 덜 자란 소년의 성장 여지를 자연스럽게 설명하는 방식이었습니다. 그리고 런던 타워 브리지 클라이맥스에서 수천 대의 드론 사이를 눈 감고 통과하는 슬로우 모션은, 그 성장이 비로소 완성되는 순간이었죠. 제가 직접 극장에서 그 장면을 봤을 때 심장이 쪼그라드는 느낌이었습니다.
- 홀로그램 기술을 활용한 미스테리오의 속임수는 현대 가짜 뉴스 생태계의 알레고리
- 스마트폰과 SNS에 중독된 군중 묘사로 미디어 리터러시의 부재를 직접 비판
- 스파이더 센스의 단계적 성장이 피터 파커의 내면 성숙과 궤를 같이함
- JJJ의 편집된 영상 공개로 마무리되는 쿠키 장면은 진실 왜곡의 현실적 묘사
스파이더맨의 독립적 서사, 왜 계속 아이언맨 그늘에 머무는가
~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는데, 저는 이 부분에서 오히려 아쉬움이 더 컸습니다. 이 영화가 재미있다는 건 부정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냉정하게 보면, 미스테리오와 그의 동료 일당이 모두 토니 스타크에게 무시당하거나 기술을 탈취당한 전직 직원들이라는 설정은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전작에서도 벌처가 비슷한 구조였죠. 저는 이게 반복될 때마다 피터 파커가 아이언맨의 부속품처럼 보인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히어로의 정체성은 빌런이 만든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아이언맨에게는 만다린이 있었고, 토르에게는 로키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스파이더맨에게는? 킹핀도, 그린 고블린도, 닥터 옥토퍼스도 없습니다. 스파이더맨이라는 히어로의 서사적 앙숙(nemesis), 즉 주인공과 숙명처럼 얽힌 대립 악당이 MCU(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Marvel Cinematic Universe의 약자로 마블이 공유 세계관으로 제작하는 영화 시리즈를 뜻합니다) 안에서는 아직도 등장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디스(EDITH) 문제도 짚지 않을 수 없습니다. EDITH란 토니 스타크가 피터에게 남긴 AI 기반의 무기 통제 시스템으로, 마음만 먹으면 전 세계 지도자를 단번에 제거할 수 있는 사실상 지구 지배에 가까운 초월적 시스템입니다. 그런데 피터는 두세 번 만난 사람에게 이걸 넘겨줍니다. 부담감 때문이라는 건 이해하지만, 제 경험상 아무리 10대 소년이라 해도 멘토가 남긴 유품을 저렇게 넘기는 건 납득하기 어려웠습니다. 수백 명을 지휘하면서 매일 책임감의 무게를 몸으로 느껴온 입장에서 보면 더욱 그랬습니다.
~라는 의견도 있지만, 실제로 영화를 보고 나서 드는 생각은 이겁니다. 피터 파커가 해피와 짧은 대화 몇 마디로 갈등을 훌훌 털어내는 장면, 비행기 안에서 슈트를 뚝딱 만들어내는 장면이 감동적으로 연출됐다는 점은 인정합니다. 팬들에게는 토니를 연상케 하는 레드 제플린 BGM과 캡틴 아메리카 오마주 장면이 뭉클하게 다가왔을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그 장면들에서 가슴이 두근거리기보다 "이야기의 구멍을 오마주로 메우려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
출처: Box Office Mojo 집계 기준으로 이 영화는 전 세계에서 약 11억 3천만 달러의 흥행 수익을 거뒀습니다. 흥행 수치만 보면 흠잡을 데 없지만, 높은 수익이 이야기의 완성도를 보증하지는 않는다는 게 저의 솔직한 생각입니다.
닉 퓨리와 마리아 힐이 사실 스크럴(Skrull), 즉 변신 능력을 가진 외계 종족이었다는 쿠키 장면은 진실과 거짓의 혼동이라는 주제에는 잘 맞아떨어집니다. 하지만 이걸 모르는 관객이라면 영화 내내 그들의 행동을 완전히 다른 맥락으로 읽었을 것이고, 그 혼란이 반드시 의도된 연출인지는 솔직히 모르겠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스파이더맨 파 프롬 홈, 마블 영화 처음 보는 사람도 볼 수 있나요?
A. 솔직히 쉽지 않습니다. 아이언맨 시리즈, 어벤져스 엔드게임, 캡틴 마블을 최소한 보지 않으면 닉 퓨리가 왜 나오는지, EDITH가 뭔지, 왜 모두가 아이언맨을 추모하는지 영화가 전혀 설명해주지 않습니다. MCU 입문용으로는 권하기 어렵고, 시리즈 팬들을 위한 영화에 가깝습니다.
Q. 미스테리오는 왜 EDITH를 받고도 세계 지배 같은 걸 안 노렸나요?
A. 저도 가장 납득이 안 됐던 부분입니다. 영화 내에서 미스테리오의 목표는 홀로그램으로 가짜 위기를 연출해 대중적 영웅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세계 지배보다는 명예욕에 가까운 동기인데, EDITH의 실제 파괴력에 비하면 목표가 너무 소박해서 오히려 빌런의 무게감이 떨어진다는 시각도 있고, 그래서 더 현실적인 소인배 악당이라는 해석도 있습니다. 어느 쪽으로 보느냐에 따라 평가가 갈리는 지점입니다.
Q. 스파이더 센스가 이 영화에서 처음 제대로 나온 건가요?
A. MCU 스파이더맨 시리즈에서 스파이더 센스가 명확하게 묘사된 건 사실상 이 영화가 처음에 가깝습니다. 전작 홈커밍에서는 거의 보여주지 않았고, 이 영화에서 '피터 찌릿찌릿'이라는 표현으로 등장하면서 아직 완전히 개발되지 않은 미숙한 능력으로 설정됐습니다. 클라이맥스에서 그 능력이 완성되는 흐름이 이 영화의 성장 서사 핵심입니다.
Q. 닉 퓨리가 스크럴이었다는 게 무슨 의미인가요?
A. 쿠키 장면에서 영화 내내 닉 퓨리처럼 행동했던 인물이 사실 스크럴 종족의 탈로스였다는 게 밝혀집니다. 진짜 닉 퓨리는 우주선 어딘가에 있었던 거죠. 진실과 거짓의 경계를 허무는 이 영화의 주제와 맞닿아 있는 설정이지만, 영화 내내 닉 퓨리라고 믿고 감정이입했던 관객 입장에서는 당혹감을 줄 수 있다는 시각도 있습니다.
결론
스파이더맨: 파 프롬 홈은 분명 잘 만든 오락 영화입니다. 제가 극장에서 2시간 넘게 시선을 한 번도 못 뗐다는 것 자체가 그 증거입니다. 미스테리오를 통한 가짜 뉴스 비판, 스파이더 센스의 성장 서사, 런던 타워 브리지 클라이맥스의 시각적 완성도는 진심으로 칭찬하고 싶습니다.
다만 MCU 스파이더맨이 두 편 내내 아이언맨의 유산을 뒤치다꺼리하는 구조에 머물고, 피터 파커만의 숙명적인 앙숙이 아직 없다는 점은 아쉽습니다. 화려한 CG와 오마주가 이야기의 빈틈을 완전히 가릴 수는 없으니까요. 재미를 원하신다면 충분히 볼 만한 영화입니다. 다만 시리즈 맥락을 모르신다면 예습을 먼저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