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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저는 공포영화에 이 정도로 쫄릴 줄 몰랐습니다. 육아 때문에 한동안 영화관을 못 가다가, 아이가 잠든 틈을 타 심야 타임으로 뛰어들었던 게 옵세션이었는데요. 팝콘을 뒤집어 쓸 뻔한 장면이 한 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미국에서 화제였다는 말을 듣고 기대를 잔뜩 안고 들어갔는데, 그 기대를 충분히 채워준 영화였습니다.
원 위시 윌로우, 장치냐 핵심이냐
영화의 출발점은 주인공 베어가 구입한 장난감 원 위시 윌로우입니다. 소원을 들어준다는 설정인데, 베어는 이걸 이용해 니키가 세상 누구보다 자신을 사랑하게 해달라고 빌죠. 처음 이 설정을 접했을 때 저는 솔직히 조금 의아했습니다. 인간의 욕망과 집착이라는 묵직한 주제를 다루는 영화가 왜 굳이 장난감이라는 매개체가 필요했을까 싶었거든요.
물론 영화는 약물 중독 이력이라는 빠져나갈 구멍을 한쪽에 만들어 두긴 합니다. 프리키 니키(Freaky Nikki), 즉 니키의 또 다른 자아가 약물 기인 심리 분열일 수도 있다는 암시이죠. 여기서 프리키 니키란 원 위시 윌로우의 저주로 인해 니키 안에서 깨어난 병적 집착의 인격을 가리킵니다. 하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특히 이안이 결정적 피해를 입는 장면에 이르면 원 위시 윌로우가 모든 원인이라는 결론에서 벗어나기 어렵습니다.
제 생각에는 장난감이라는 설정 자체보다 아쉬운 건 그것이 너무 일찍, 너무 명확하게 답을 줘버린다는 점입니다. 장난감 없이도 인간의 욕심과 집착만으로 이야기를 끌고 갔다면 서사의 긴장감이 더 오래 지속되지 않았을까 싶었거든요. 그럼에도 영화가 원 위시 윌로우를 모호하게 처리하지 않고 명확히 원인으로 못 박는 선택은 나름의 설계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감독은 장치의 불명확함이 아니라 인물들의 심리에서 공포를 끌어내고 싶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 원 위시 윌로우: 소원을 이뤄준다는 초자연적 장난감. 영화의 모든 공포를 촉발하는 장치
- 프리키 니키: 저주로 깨어난 니키의 또 다른 인격. 집착과 폭력성의 화신
- 타비켓(Tabiket): 원 위시 윌로우 제조사 이름. 영어로 Cat을 연상시키며 고양이 저주 복선으로 작동
공포 연출이 이 영화를 다르게 만드는 이유
심야 영화관에서 제가 실제로 느낀 건 잔혹한 이미지보다 사운드스케이프(Soundscape)의 충격이었습니다. 사운드스케이프란 영화 속 음향 환경 전체, 그러니까 배경음악과 효과음, 침묵까지 포함해 관객의 감정을 설계하는 청각적 연출을 말합니다. 이 영화는 그걸 굉장히 영리하게 씁니다.
긴장감이 고조되는데 아무 일도 안 일어나고, 반대로 평온한 BGM이 흐르는 순간 갑자기 장면이 폭발합니다. 제가 팝콘을 거의 뒤집어 쓸 뻔한 것도 바로 그런 장면 때문이었고요. 시각적 고어(Gore), 즉 피와 신체 훼손 같은 직접적인 폭력 이미지만 따지면 코랄리 파르자 감독의 서브스턴스(출처: IMDb - The Substance)가 훨씬 강도가 높습니다. 그런데도 제 경험상 옵세션이 더 무서웠습니다. 무엇이 언제 터질지 모른다는 불확실성, 그게 가장 원시적인 공포거든요.
세라의 사망 시퀀스는 이 영화에서 제가 가장 오래 기억할 장면입니다. 프레이밍(Framing), 즉 카메라가 무엇을 담고 무엇을 잘라내는지의 선택이 너무 잔인하리만치 정직합니다. 대학 합격 통지서로 보이는 봉투가 화면 한쪽에 보이는 순간, 그 장면의 슬픔은 몇 배로 올라갑니다. 니키가 마리오네트처럼 기이하게 움직이며 뒤로 걷는 장면은 공포와 기괴함 사이 어딘가였는데, 제가 직접 보고 나서야 왜 이 영화가 유전과 비교되는지 이해가 됐습니다. 심리적 공포가 시각화되는 방식이 닮아 있거든요.
집착의 의미, 니키만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영화를 보고 나서 가장 오래 머릿속을 맴돈 건 제목인 옵세션(Obsession), 즉 집착이 누구를 향한 말인가였습니다. 관객 대부분은 당연히 프리키 니키를 가리킨다고 생각하겠지만, 제가 보기엔 베어 역시 그에 못지않은 집착의 주체입니다.
니키가 "나를 좀 죽여줘"라고 말하는 장면, 그러니까 자신 안에 통제할 수 없는 또 다른 자아가 있다는 걸 인지하고 이러느니 죽는 게 낫다고 고백하는 장면에서 베어의 반응이 소름 돋습니다. 그는 니키가 진지하게 죽음을 이야기하는 그 순간에 "나를 사랑하는 거 맞냐"고 묻습니다. 이 캐릭터는 사랑하는 사람이 광인이 되어가는 걸 알면서도 그 총합으로서의 니키가 자신을 사랑하는 것에 집착하는 것입니다.
네 명의 인물 중 제 눈에 가장 깨끗한 사람은 세라입니다. 마음을 떠보지도 않고, 가짜 고백 연습도 하지 않고, 친구에게 비밀을 감추지도 않죠. 그런데 극 중 가장 잔인하게 파괴되는 것도 세라입니다. 총에 맞은 이안의 장면은 보여주지 않으면서, 세라의 시신만큼은 카메라가 끝까지 응시합니다. 연구에 따르면 영화 속 폭력의 피해 서사는 관객의 감정 이입 방향을 설계하는 데 결정적으로 작용합니다(출처: 영화진흥위원회). 가장 바람직한 태도를 가진 사람에게 발생한 비극을 직시하도록 강제하는 이 선택에서, 감독이 현시대를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졌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옵세션은 공포영화인가요, 스릴러인가요?
A. 장르를 딱 하나로 구분하기 어렵습니다. 초중반은 심리 스릴러에 가깝고, 후반부로 갈수록 공포와 고어 요소가 강해집니다. 제가 직접 보면서 느낀 건 오히려 그 경계가 흐릿한 부분이 이 영화의 강점이라는 점이었습니다.
Q. 원 위시 윌로우의 저주는 어떻게 작동하나요?
A. 영화는 정확한 메커니즘을 설명하지 않습니다. 다만 베어가 니키를 사랑하게 해달라고 소원을 빌었고, 그 결과 니키 안에서 병적 집착의 인격인 프리키 니키가 깨어납니다. 영화 후반부에 이르면 이것이 약물 기인 증상이 아닌 실제 저주임이 거의 확정됩니다.
Q. 고양이 샌디가 복선이라는 해석은 어디서 나온 건가요?
A. 영화 제작사 이름 타비켓(Tabiket)이 Cat을 연상시키고, 베어가 샌디를 잃은 바로 그날 고백을 하러 나간다는 흐름에서 나온 해석입니다. 베어가 결국 샌디와 동일한 방식인 진통제 과량 복용으로 사망하는 결말도 이 복선을 뒷받침합니다.
Q. 아이 있는 부모가 보기에 무서운 수위인가요?
A. 제가 육아 중에 심야로 보러 갔을 만큼 보고 싶었던 영화인데, 막상 보고 나니 후반부 폭력 장면 강도가 상당합니다. 고어에 익숙하지 않은 분이라면 세라의 사망 시퀀스 전후로 불편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심리적 긴장에는 강하지만 직접적 폭력에 민감하다면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결론
더운 여름에 간담이 서늘해지는 경험을 원한다면 옵세션은 충분한 선택지입니다. 소원을 들어주는 장난감이라는 설정이 처음엔 조금 가볍게 느껴질 수 있지만, 영화가 진짜 말하고 싶은 건 결국 사람 사이의 기만과 집착이라는 점에서 충분히 씹을 거리가 있습니다.
제가 보기에 이 영화의 진가는 공포 연출의 영리함에 있습니다. 사운드스케이프로 관객을 교란하고, 프레이밍으로 슬픔과 공포를 동시에 설계하는 방식은 꽤 오래 기억에 남습니다. 별점은 네 개. 한 줄 요약은 야옹이의 저주, 로 충분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