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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이 해주시던 밥 한 끼가 갑자기 그리워지는 순간, 어쩌면 그냥 지나쳤을 감정이 영화 한 편으로 터져버렸습니다. 이준익 감독의 신작 <아버지의 집밥>은 고리타 작가님의 동명 웹툰을 원작으로 한 작품으로, 롯데시네마 단독 선개봉 후 레진스넥 플랫폼에서 2부작으로 공개 예정입니다. 제가 평소 원작 웹툰을 즐겨 봤던 터라 개봉 소식을 듣자마자 바로 예매했고, 세로형 시네마라는 낯선 형식에 대한 궁금증까지 더해져 설레는 마음으로 극장에 들어갔습니다.
연출과 연기, 억지 없이 울렸다
가족 드라마 장르에서 가장 피하고 싶은 게 뭐냐고 물으면, 저는 단연 과잉 감정 유발이라고 답합니다. 슬픔을 억지로 쥐어짜는 연출이 오히려 몰입을 깨버리는 경험을 너무 많이 해봤거든요. 그런데 이 작품은 달랐습니다. 제가 직접 보면서 느낀 건, 슬기로운 의사생활처럼 별다른 대형 사건 없이도 마음을 조용히 흔들어버리는 인간적인 온도가 있었다는 점입니다.
정재영 배우님이 연기하신 고하응은 40년 동안 아내 순애의 밥을 당연하게 받아먹던 구두 수선공 장인입니다. 여기서 구두 수선공이라는 직업 설정이 단순한 배경이 아닌데, 손으로 타인의 신발을 정성껏 고치는 장인이 정작 자기 집 부엌에는 발 한 번 들여놓지 않았다는 아이러니가 인물의 입체성을 만들어냅니다. 이정은 배우님이 연기하신 순애가 교통사고 이후 요리백지증에 걸리면서 이 아이러니가 본격적으로 충돌하기 시작합니다.
요리백지증이란 요리하는 방법 자체를 기억하지 못하게 되는 증상으로, 극 중에서는 의사 역을 맡은 이현욱 배우님이 진지하면서도 툭툭 던지는 방식으로 이 진단을 전달합니다. 솔직히 이 장면에서 픽 웃고 말았는데, 억지스럽지가 않아서 오히려 더 자연스럽게 이야기 안으로 끌려 들어갔습니다. 처음 부엌에 들어선 하응이 당황하는 장면은 제 경험상 이런 류의 코미디가 유독 현실감이 있을 때 제대로 웃기더라는 걸 다시 한번 확인시켜줬습니다.
이준익 감독 특유의 미장센, 즉 카메라가 인물의 감정을 따라가되 절대 앞서 나가지 않는 연출 방식이 여기서도 빛을 발했습니다. 미장센(mise-en-scène)이란 화면 안에 담기는 모든 시각적 요소를 감독이 의도적으로 배치하는 방식을 의미하는데, 이 작품에서는 좁은 부엌, 낡은 식탁, 반찬 하나하나의 배치가 단순한 소품이 아니라 이 가족의 40년을 압축한 언어처럼 느껴졌습니다.
또 1세대 부부와 2세대 부부, 즉 하응·순애 부부와 아들 재황·며느리 가정의 모습이 대비되는 구성도 인상적이었습니다. 맞벌이가 사실상 선택이 아닌 현실이 된 지금의 가정과 전업주부가 당연시되던 시대의 가정을 병렬로 배치해 집밥의 의미가 세대마다 어떻게 달라지는지 자연스럽게 보여줍니다. 이런 세대 간 내러티브 구조, 즉 한 가족 안에서 시간을 겹쳐 보여주는 방식이 이 영화의 가장 탄탄한 뼈대라고 생각합니다.
- 과잉 감정 유발 없이 일상의 온도로 감동을 쌓는 연출
- 요리백지증이라는 설정을 통한 자연스러운 코미디와 긴장감 공존
- 1세대와 2세대 가정을 대비해 집밥의 의미 변화를 시각화
- 구두 수선공이라는 직업 설정이 인물 서사의 아이러니를 완성
세로형 시네마, 신선하지만 아쉬운 현실
이 영화를 보러 가기로 결정한 이유 중 하나가 세로형 시네마라는 형식이었습니다. 롯데시네마에서 단독으로 선보인 이 포맷은 우리가 일상에서 숏폼 콘텐츠를 소비할 때 익숙한 9대 16 비율, 즉 세로로 긴 화면을 극장 대형 스크린에서 구현한 방식입니다. 9대 16 비율이란 가로보다 세로가 긴 화면 구성으로, 스마트폰 화면 그대로를 극장에 옮겨온 포맷입니다.
제가 직접 앉아서 본 첫인상은 "생각보다 신기하다"였습니다. 넓은 스크린 양옆은 검은 여백으로 채워지고 가운데에 세로로 긴 화면이 나오는 구조인데, 와이드 화면에 익숙한 눈이 처음엔 어색하게 반응했습니다. 그런데 이 제한된 비율이 오히려 배우의 표정과 감정에 집중하게 만드는 효과가 있었습니다. 특히 정재영 배우님과 이정은 배우님의 눈빛 연기, 미묘한 표정 변화가 이 좁은 프레임 안에서 더 크게 다가왔습니다.
그러나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레진스넥 플랫폼에서 2부작으로 공개될 콘텐츠를 147분짜리 극장 상영으로 이어 붙이다 보니, 중반부에서 체감 속도가 확실히 느려지는 구간이 있었습니다. 러닝타임(running time), 즉 영화가 시작해서 끝날 때까지의 총 상영 시간이 147분인데, 이 분량을 중간 휴식 없이 세로 화면으로 집중해서 봐야 하니 눈의 피로도가 일반 와이드 영화보다 확실히 높았습니다.
예산 규모도 솔직히 티가 났습니다. 세트장 구성이나 영상의 전반적인 완성도가 극장 상업영화의 기준으로 보면 아쉬운 부분이 있었고, 이것이 147분 내내 단조로움으로 이어지는 원인이 되기도 했습니다. 숏폼 드라마(short-form drama)란 원래 회당 짧은 분량으로 설계된 콘텐츠 형식인데, 이 포맷을 극장 상영에 맞게 재편집하다 보니 완급 조절이 다소 어색해진 부분이 있습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의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숏폼 드라마 시장은 2024년 기준 급격한 성장세를 기록하고 있으며(출처: 한국콘텐츠진흥원), 이 작품은 그 흐름 위에서 극장이라는 공간을 실험적으로 활용한 시도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굳이 극장에서 볼 필요가 있느냐는 질문에는 솔직히 망설여집니다. 세로형 시네마라는 포맷 자체의 신선함은 분명 있지만, 이 형식이 주는 경험이 147분의 피로도를 상쇄할 만큼 압도적이지는 않았습니다. 레진스넥에서 2부작으로 공개되면 각 파트가 끊어지는 구조라 호흡이 훨씬 자연스러울 것 같다는 게 제 판단입니다. 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 기준으로도 이 같은 OTT 선공개 후 극장 상영 방식은 점차 늘어나는 추세입니다(출처: 영화진흥위원회 KOBIS).
자주 묻는 질문
Q. 아버지의 집밥 원작 웹툰 먼저 봐야 하나요?
A. 저는 원작 웹툰을 먼저 봤지만 사전 지식 없이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구성입니다. 영화 자체가 인물 소개와 감정선을 독립적으로 설명해주기 때문에 웹툰을 모르더라도 몰입에 전혀 문제가 없었습니다. 원작을 보고 가면 인물에 더 빠르게 감정 이입이 된다는 정도의 차이입니다.
Q. 세로형 시네마, 실제로 극장에서 보는 게 의미 있나요?
A. 솔직히 말하면 의미는 있되 필수는 아닙니다. 인물의 표정에 집중하게 되는 효과는 분명하지만 넓은 스크린 양옆의 검은 여백이 답답하게 느껴지는 순간도 있었습니다. 레진스넥에서 스트리밍 공개 예정이므로, 그때 편안한 환경에서 보는 것도 충분히 좋은 선택입니다.
Q. 아이들이나 부모님과 함께 볼 만한 영화인가요?
A. 제 경우에는 보는 내내 부모님 생각이 너무 나서 오히려 혼자 보길 잘했다 싶었습니다. 그만큼 부모님과 함께 보면 같이 눈물 흘리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좋은 소재가 되는 영화입니다. 자극적인 장면이 없어 온 가족이 함께 보기에 무리가 없습니다.
Q. 레진스넥에서 공개되는 날짜가 언제인가요?
A. 9월 17일과 9월 24일, 한 주 간격으로 총 2부작 공개가 예정되어 있습니다. 극장 단독 선개봉 이후 순차적으로 스트리밍 플랫폼에 공개되는 방식이니 일정을 확인하고 기다리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결론
영화관을 나오면서 제일 먼저 한 건 엄마한테 전화하는 것이었습니다. 별말은 못 했는데 그냥 목소리가 듣고 싶었습니다. 이 영화가 그런 영화입니다. 거창한 메시지를 던지는 게 아니라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 밥 한 끼, 부엌의 온기, 부모님의 하루를 다시 들여다보게 만드는 작품입니다.
세로형 시네마의 한계나 제작비의 아쉬움이 없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그 아쉬움을 충분히 덮을 만큼 배우들의 연기와 이준익 감독의 연출이 진심 어린 온도를 만들어냈습니다. 레진스넥에서 2부작으로 공개되면 꼭 한 번은 보시길 권합니다. 가능하면 부모님 생각이 날 때, 혼자 조용히 보는 걸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