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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노태우 정부의 '범죄와의 전쟁' 선포 직후 부산을 비롯한 전국에 조직폭력 소탕령이 내려집니다. 이 영화는 그 시대를 살아남은 한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시대극으로서의 밀도 — 사투리와 생존의 문법
이 영화의 중심에는 미장센(mise-en-scène)이 있습니다. 미장센이란 카메라 앵글, 조명, 배우의 위치 등 화면 안에 담기는 모든 시각적 요소를 연출하는 방식을 의미합니다. 특이한 점은 이 영화가 미장센을 화려하게 쓰지 않는다는 겁니다.
배우들의 사투리 연기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최민식 배우가 연기한 최익현은 전형적인 악당도, 주인공도 아닙니다. 세관 공무원이라는 직위를 방패 삼아 조직의 줄을 타고 올라가는, 그야말로 '생존형 인간'입니다.
하정우 배우가 맡은 조직 보스 최형배와의 관계는 카리스마 대결이라기보다 서로가 서로를 이용하는 공생 관계에 가깝습니다. 선악의 구분 없이 '줄'과 '인맥'으로 굴러가던 시대의 생리를 두 배우가 몸으로 설명해 냅니다.
- 최익현(최민식): 세관 공무원 출신, 줄을 타고 조직 내부로 침투하는 생존형 캐릭터
- 최형배(하정우): 부산 지역 실세 보스, 서늘한 카리스마로 권력 구조의 정점을 표현
- 1980~90년대 부산을 배경으로 한 실제 역사적 사건을 모티프로 삼아 현실감을 극대화
- 사투리와 시대 언어를 살린 대사가 내레이션 없이 인물 관계를 전달하는 핵심 장치
생존의 논리 — 이 영화가 씁쓸한 이유
국가가 갑자기 규칙을 바꾸는 그 순간, 그동안 줄을 타고 올라왔던 최익현의 세계가 한순간에 뒤집힙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을 꼽자면 인물 간의 관계 변화가 후반부에서 다소 빠르게 정리된다는 느낌이 있습니다. 특히 최익현과 최형배의 결별 과정이 좀 더 촘촘하게 그려졌다면 여운이 더 길었을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배우들의 연기 밀도는 다시 봐도 전혀 낡지 않았습니다. 이 영화만이 줄 수 있는 특유의 습기 있는 긴장감, 그게 여전히 살아 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범죄와의 전쟁은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인가요?
A. 실제 1990년 노태우 정부의 '범죄와의 전쟁' 선포와 부산 조직폭력 소탕 작전을 모티프로 삼았습니다. 다만 특정 인물이나 사건을 1대 1로 재현한 것은 아니고, 영화적 각색이 상당 부분 들어가 있습니다.
Q. 최민식이랑 하정우 중에 누가 더 인상적이었나요?
A. 하정우 배우의 서늘한 카리스마도 강렬하지만, 최민식 배우는 능구렁이 같은 유연함 속에 불안을 감추는 연기를 대사와 눈빛만으로 해냅니다.
Q. 폭력적인 장면이 많아서 보기 힘들지 않나요?
A. 이 영화는 폭력을 노골적으로 전시하기보다는 분위기와 여백으로 압박하는 방식을 씁니다. 잔인한 장면이 많은 영화를 힘들어하시는 분도 충분히 볼 수 있는 수위입니다.
Q. 사투리가 심해서 대사를 알아듣기 어렵지 않나요?
A. 부산 사투리가 짙게 깔려 있어서 처음엔 낯설 수 있습니다. 자막을 켜고 보시면 대사의 맛을 훨씬 더 풍부하게 즐길 수 있고, 오히려 그 사투리가 시대 분위기를 살리는 핵심 장치라는 걸 느끼게 될 겁니다.
결론
정리하면, 범죄와의 전쟁은 조폭 장르의 외피를 쓰고 있지만 본질은 '생존의 논리'를 추적하는 시대극입니다. 최익현이라는 인물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 순간 그의 선택이 이해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게 이 영화가 불편하면서도 오래 남는 이유입니다. 두 번째 볼 때는 처음과 다른 층위의 이야기가 보입니다.
영화를 처음 접하시는 분이라면 시대적 배경인 1980~90년대 부산의 정치 상황을 간단히 찾아보고 보시길 권합니다. 그 맥락을 알고 보면 후반부의 소탕령 장면이 단순한 드라마틱한 반전이 아니라 국가 권력의 작동 방식에 대한 날카로운 발언으로 읽힙니다. 지금 봐도 충분히 설득력 있는 작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