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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동 감독의 신작 <가능한 사랑>이 2025년 9월 23일 극장 개봉과 동시에 제82회 베니스국제영화제 은사자상을 수상했습니다. 개봉 당일 퇴근하자마자 상영관으로 달려갔는데, 영화가 끝나고도 한참 동안 자리에서 일어나질 못했습니다. 8년이라는 공백이 무색할 만큼, 이창동 감독은 여전히 사람의 가장 불편한 곳을 정확하게 찌르고 있었습니다.
계층 대비 — 이 영화가 기생충보다 더 서늘한 이유
<가능한 사랑>의 구조는 단순해 보입니다. 대기업 구조조정으로 해고된 노동자 호석(설경구)과 그의 아내 미옥(전도연), 그리고 이들을 취재하는 다큐멘터리 감독 예지(조여정)와 그의 남편 상우(조인성). 두 부부의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이 단순한 설정 안에서 감독은 계층 간 간극(階層間 間隙), 쉽게 말해 서로 다른 삶의 층위에 속한 사람들이 절대 좁혀지지 않는 거리를 아주 선명하게 드러냅니다.
제가 극장에서 가장 먼저 눈에 꽂혔던 건 두 부부의 '물건'이었습니다. 상우 부부가 타고 다니는 차와 예지가 걸친 옷. 반면 호석 부부의 집과 철이(아들)의 교복. 감독은 대사 한 마디 없이도 이 두 세계 사이에 얼마나 두꺼운 벽이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기생충>이 계급 우화(階級 寓話), 즉 계층 갈등을 우화적·과장된 방식으로 표현했다면, <가능한 사랑>은 그보다 훨씬 직접적입니다. 쨍하게, 있는 그대로 다 보여줍니다.
<버닝>을 좋아하는 분들 중에는 그 영화의 뿌옇고 불분명한 분위기를 미덕으로 꼽는 시각도 있는데, 저는 이번 작품의 방식이 오히려 더 불편하게 다가왔습니다. 모호함이 없으니 도망칠 곳도 없는 거죠. 예지가 해고 노동자들을 인터뷰하러 나타난 자리에서 명품 백을 들고 있는 장면은, 그것 자체가 어떤 악의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정말 불편했습니다. 예지를 가식적이라고 말하기도 어렵습니다. 그냥 그 사람이 살아온 환경에서 나온 자연스러운 행동인 거죠. 그래서 더 서늘합니다.
조여정 배우가 연기한 예지라는 인물이 이창동 감독 자신을 투영한 면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처음엔 의외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영화를 다시 떠올려보면, 카메라를 들고 누군가의 이야기를 끌어내려 하는 사람이 정작 자신이 어느 위치에 서 있는지 모른다는 것 — 그 아이러니가 감독 자신에 대한 성찰처럼 읽히더군요. 이 영화가 넷플릭스라는 초거대기업의 투자로 만들어졌다는 사실도 같은 맥락에서 되새겨볼 만 합니다. 해고 노동자의 이야기를 가장 큰 자본이 유통한다는 그 아이러니를요.
이 영화의 주제를 뒷받침하는 현실 지표도 묵직합니다. 출처: 통계청에 따르면 2024년 기준 국내 비자발적 실직자(본인 의사와 무관하게 직장을 잃은 노동자) 수는 꾸준히 증가 추세에 있으며, 제조업과 대기업 구조조정 여파가 중·장년층 가계에 직접적인 충격을 주고 있습니다. 호석의 이야기가 스크린 안의 허구로만 느껴지지 않는 이유입니다.
- 두 부부의 소품(차, 옷, 집)만으로 계층 대비를 시각화 — 대사 없이 전달
- <기생충>보다 직접적, <버닝>보다 선명한 계층 묘사 방식
- 예지 캐릭터의 '선의로 행하는 폭력' — 악의 없는 계층 감수성 부재
- 넷플릭스 투자 + 해고 노동자 이야기라는 구조적 아이러니
베니스 영화제 은사자상 — 연기와 연출, 실제로 보니
베니스국제영화제 은사자상(銀獅子賞)은 금사자상(최고상) 바로 아래 단계의 심사위원 대상으로, 경쟁 부문에 초청된 작품 중 예술적 성취가 탁월하다고 인정받은 작품에 수여됩니다. 쉽게 말해 올해 베니스에서 두 번째로 높은 상을 받은 것입니다. 출처: La Biennale di Venezia 공식 사이트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 이 상은 단순한 흥행 기대작이 아닌 영화 언어 자체에 대한 평가입니다. 솔직히 시상 소식을 들었을 때 "당연하지"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 직접 보고 나니 더욱 그렇습니다.
러닝타임(상영 시간)은 164분입니다. 이 시간 동안 폭발이나 추격전 같은 큰 사건은 사실상 없습니다. 차를 타고 대화하고, 카메라 앞에서 인터뷰하고, 밥을 먹으며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제가 직접 극장에 앉아서 느낀 건, 이 정적인 흐름 안에서 인물들의 내면이 결코 조용하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오히려 큰 사건이 없기 때문에 배우들의 표정 하나, 눈빛 하나가 온전히 살아남습니다.
전도연과 설경구가 이창동 감독과 다시 만난 것만으로도 이미 기대치가 높았는데, 제 경험상 이런 기대는 대개 반쯤은 실망으로 끝나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이번은 달랐습니다. 설경구가 해고 통보를 받은 뒤 집으로 돌아오는 장면에서 저는 팝콘을 내려놓았습니다. 아무 말 없이 현관에 서 있는 그 표정 하나가, 백 마디 대사보다 더 많은 것을 전달했습니다.
조인성에 대해서는 말하고 싶은 게 많습니다. 같은 시기 공개된 <호프>에서도 좋은 연기를 보여줬지만, 저는 <가능한 사랑>에서의 조인성이 훨씬 더 어려운 연기를 해냈다고 봅니다. <호프>는 그래도 스펙터클(시각적 볼거리)이 있어서 배우가 기댈 수 있는 외부 자극이 있습니다. 반면 이 영화는 말과 침묵과 시선만으로 캐릭터를 쌓아야 합니다. 상우라는 인물이 나쁜 사람이냐고 묻는다면 대답하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그 애매함 자체를 조인성은 완벽하게 체화해 냈습니다. <가능한 사랑>을 보고 나서 지금의 조인성이 정말 큰 배우가 됐다는 걸 다시 한번 확인했습니다.
아역 배우, 즉 호석과 미옥의 아들 철이를 연기한 어린 배우도 언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대사가 많지 않아서 오히려 더 어렵습니다. 극중 상황의 무게를 대사 없이 몸으로 받아내는 연기였는데, 눈빛이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이 영화가 앙상블(Ensemble) 연기, 즉 주연과 조연 모두가 하나의 유기적인 연기 공동체를 이루는 방식으로 완성됐다는 것을 실감했습니다.
다만 솔직히 말씀드리면, 164분이라는 러닝타임은 체력 소모가 큽니다. 영화가 관객에게 요구하는 집중도가 상당히 높아서, 가벼운 마음으로 찾아간 분들에게는 진입 장벽이 느껴질 수 있습니다. 이 부분은 분명히 아쉬운 점이고, 대중적 접근성 측면에서는 비판이 가능한 지점입니다. 예술 영화의 미덕과 관객 친화성 사이의 균형이라는 오래된 논쟁에서, <가능한 사랑>은 전자를 택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가능한 사랑, 넷플릭스 공개는 언제인가요?
A. 극장 개봉은 2025년 9월 23일이며, 넷플릭스에서는 2025년 11월 6일부터 시청할 수 있습니다. 저는 개봉 당일 극장을 택했는데, 이창동 감독의 영화는 큰 스크린에서 보는 것과 집에서 보는 것이 경험 자체가 다를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넷플릭스로 보셔도 영화의 힘은 충분히 전달될 것입니다.
Q. 기생충이나 버닝을 재밌게 봤으면 이 영화도 맞을까요?
A. <기생충>처럼 계층 대비를 선명하게 드러내는 방식을 좋아하셨다면 잘 맞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다만 <기생충>에는 장르적 재미와 반전이 있는 반면, <가능한 사랑>은 훨씬 더 조용하고 무게감이 있습니다. <버닝>의 모호한 분위기를 선호하는 분들 중에는 이번 작품이 너무 직접적이라고 느끼는 시각도 있을 것 같습니다. 저는 두 영화 모두 좋아하는 편인데, <가능한 사랑>은 그 중간 어딘가에 있는 느낌이었습니다.
Q. 164분 러닝타임, 실제로 지루하지 않나요?
A. 솔직히 말하면 지루함을 느끼는 순간이 없지는 않습니다. 특히 플래시백(과거 회상 장면)과 현재가 교차하는 초반부 30분은 리듬을 타기까지 시간이 걸립니다. 그러나 인물들이 본격적으로 얽히기 시작하면 164분이 짧게 느껴지는 지점이 분명히 옵니다. 상영 전에 화장실을 꼭 다녀오시길 권합니다. 중간에 자리를 뜨기 아까운 장면이 많습니다.
Q. 베니스 은사자상이 금사자상보다 낮은 상인가요?
A. 맞습니다. 베니스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서 금사자상(최고 작품상) 바로 아래가 은사자상(심사위원 대상)입니다. 단순히 '2등'이라는 의미보다는, 영화제 전체를 통틀어 가장 권위 있는 심사위원단이 예술적 성취를 인정했다는 의미로 보는 시각이 맞습니다. 영화제 간 비교를 하자면, 베니스의 사자상과 베를린의 황금곰상 중 어느 쪽이 더 권위 있냐는 건 그 해 심사위원 구성과 선정 작품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단순 비교는 어렵습니다.
결론
8년 만에 돌아온 이창동 감독은 여전히, 아니 이전보다 더 서늘한 방식으로 사람을 들여다봅니다. <가능한 사랑>은 아무도 나쁜 사람이 없는데 상황이 잘못되는 영화입니다. 그 무력감이 극장 밖으로 따라 나왔습니다. 저는 이 영화를 별점으로 환산하면 다섯 개 중 네 개 반을 주겠습니다. 나머지 반 개는 164분이라는 진입 장벽에 대한 솔직한 평가입니다.
넷플릭스 공개(11월 6일)를 기다리는 방법도 있지만, 제가 직접 두 화면 모두에서 이창동 감독의 작품을 경험해본 결과, 이 감독의 영화는 극장의 어둠 속에서 처음 만날 때 가장 깊이 들어옵니다. 가능하다면 극장을 선택하시길 권합니다.